[쟁점]손봉호 교수에게 보내는 공개 반론
  • 이성욱 (문화 평론가) ()
  • 승인 1996.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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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손봉호 교수에게 보내는 문화 평론가의 공개 반론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을 두고 문화계 안팎에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호(제359호) 시사저널 인터뷰를 통해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손봉호 공동 대표(서울대 교수)의 반대 의견을 들어 보았다. 이에 대하여 문화 평론가 이성욱씨가 공연을 반대하는 측의 대중 문화에 대한 시각과 그것을 관철하려는 시민운동에 문제가 있다는 반론을 보내왔다. <편집자>

이번 마이클 잭슨 공연과 관련된 논의에 갑자기 관심이 동한 것은, 이 공연 반대에 이른바 시민운동 단체들이 들고 나선 사실 때문이다. 공연 성사 여부는 시간이 지나 보아야 알겠지만 행정부가 허가했다고 해서 녹록히 있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논리에 입각해 그에 반발하고 조직적 행동을 꾀하는 것이, 누르면 누르는 대로 숨 죽이고 있던 왕년의 우리 시민 사회의 수동적 악성 관습과 비교되는 대목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시민단체의 이번 반대 운동이 더욱 세찼으면 한다.

반대 단체, 평소 대중 문화 발전 위해 애썼던가

그런데 문제는 그 시민단체의 논리와 행동에 시비를 걸기로 작정하면 그들의 정당성이 갑자기 얇아진다는 데에 있다. 과소비와 어린이 성추행 혐의를 반대의 주요 논리로 삼고 있는 대목은 일견 타당한 상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관일 뿐이다. 그 논리의 속을 좀더 파고 들어가면 내실 없는 공허함만 다가온다.

이번 공연이 물론 문화 논리만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반대 조직의 대표라면 최소한의 문화적 전문성은 있어야 한다. 대표의 위치에 맞게 이번 공연에 관한 정치·문화·경제 의미를 조리있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50개 단체의 공동 대표라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이 사회의 원로이기는 하되, 가장 첨단적인 논리와 형태로 변해가는 현대의 문화적 지형 지세를 제대로 읽어내고 판단할 수 있는 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분들의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훈계가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효율은 없다. 그 도덕적 훈계로 이번 공연을 반대하겠다는 것은 자족, 꼭 그만큼에 머무른다.

지난호 ‘시사저널 인터뷰’(제359호)에서 공동 대표 중 한 분인 손봉호 선생이 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짧은 지면에 모든 예증을 다 들 수는 없지만, 라이브에 가서 듣는 것이나 음반을 듣는 것이나 별 차이 없으니, 정 마이클 잭슨 노래가 듣고 싶으면 음반을 들으라는 점잖은 권고가 그 예이다. 그 ‘우국지정’은 이해하되, 적어도 문화 예술 쪽 밥을 축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끌탕을 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이즈음 문화 현실의 구체성에서나 이론적인 측면에서나 그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부언컨대 공동 대표들의 선의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시민운동이 지명도가 높은, 그러나 전문성은 결여된 ‘어른’들의 얼굴로 한몫 보려는 관성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 같아 속이 편치 않다. 여기저기 이름만 걸어놓는, 비유컨대 ‘얼굴 마담’문화에 끌려다니는 우리 시민운동 수준이 이번에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인 일은 실무 담당자가 하면 된다고 반론할 수도 있지만, 그런 발상은 가장 비시민운동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전문성을 결여한 약점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대중 문화를 여전히 천박한 ‘딴따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현대 문화 논리에 무지한 데서 말미암는다. 다른 말은 각설한다 하더라도 시민단체의 반대 논리가 수긍되려면 동시에 대중 문화 발전에 대한 그들의 전과가 있어야 한다. 반대측이 이번 공연 협찬 후원사에 보낸 협조문에는 ‘대중 문화 발전의 성숙한 진통을 위해 후원 계획을 즉각 취소하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반대 단체들이 평소에 대중 문화 발전을 위해 대체 한 일이 무엇인가를 되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협조를 구하는 논리는 옹색해진다.

우리 사회는 ‘어른’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 강도는 시민운동이 발전한 나라들보다 더하다. 어른들이 나서서 이번 공연의 나쁜 영향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도, 그 속은 어른들이 옳다고 판단하는 문화가 청소년들에게도 옳을 것이라는 억견으로 채워진다. 또 다른 강요이다.

모르긴 몰라도 청소년들은 그런 행동을 위선이라 비웃을 터이다. 당신들이 언제 우리가 어떤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는지를 진지하게 이해하려 해보았으며, 우리에게 어떤 문화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주었냐고 반문할 터이다. 문제는 마이클 잭슨이 아니다. 이 나라의 어른들이 청소년 문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연구하지도 않은 채, 도덕적 명분으로만 청소년들을 구출 혹은 인도하겠다고 십자군을 자처할 때, 역설적으로 그것이 바로 청소년 문화를 가장 황폐하게 만드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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