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판화가 오 윤 10주기 추모전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6.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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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판화가 오 윤 10주기 추모 전시회/독창적 미술 세계 재평가 계기

 
오윤(1946~1986)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판화를 아는 이는 많다. 80년대를 통과해 오면서 오 윤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이제는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각종 팜플렛·책자·유인물에 등장한 그의 판화들은 때로는 그 내용들을 축약하고 때로는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일을 수행해 왔고, 그 역할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소통 장르라는 판화의 속성과 기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나, 오 윤 판화의 예술성은 미학적·미술사적으로 조명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그의 판화에 너무 익숙했던 탓일까. 지난 10년간 민중 미술 진영의 평문마저도 서너 개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 학고재화랑(02-739-4937)과 아트스페이스서울(02-736-1713)에서 열리고 있는 <오 윤 10주기 추모 판화 전작 전시회-오 윤, 동네사람 세상사람>(6월21일~7월20일)은, 한 예술가의 10주기 추모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떠돌이 장외 작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개인전

체질적으로 공식 전시 공간을 꺼린 탓에 작고하기 직전 단 한 차례 개인전을 열었던 그가, 예술성의 전모를 보이며 차분하게 평가 받는 기회를 사후 10년 만에 처음 갖는 것이다. ‘신화 속의 작가’를 한국 현대 미술사에 정당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기획 의도이다.

오윤기념사업회가 전시회에 맞춰 펴낸 <오 윤 10주기 추모 판화 전작집>(도서출판 학고재)에서 미술 평론가 심광현씨는 김지하 시인과 대담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오 윤 선생은 80년대 미술운동의 제일 중요한 계기랄까 동력인 것은 분명한데, 리얼리즘의 틀과 너무나 안맞아서 그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난감했지요.’ 민중 미술의 성격은 분명히 지니고 있으나 오 윤의 판화는 그 성격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세계를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미술 평론가 유홍준씨는 ‘익명성’을 오 윤 판화의 내용적 특성이라고 지목했다. 누구보다도 민중적이고 민중 지향적이었으면서도, 특정한 인물의 특정한 사건을 기념비적인 필치로 그려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 윤이 한 시대와 인물의 전형을 창출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은 바로 이 ‘익명성’ 때문이다.

오 윤 판화 양식의 특성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굵은 선이 뿜어내는 힘이다. “오 윤은 나의 스승이었다”라고 말하는 판화가 이철수씨에 따르면, 세련미를 일부러 회피한 듯한 오 윤 판화의 단순한 스타일은 전통 판화에서도 그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굵은 선이 붓의 흐름처럼 움직여가는 선묘 방식, 일부러 잘 들지 않는 칼로 새긴 듯한 우직한 방식은 우리의 정서를 잘 반영한 완강한 느낌을 준다고 이씨는 평가했다.

기질적으로 떠돌이 장외 작가로 살았던 오 윤은 판화 1백22점과, 판화 관련 자료 전시를 통해 10년 만에 공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념과 구호의 홍수에 파묻혀 유보되었던 오 윤에 대한 엄정한 미학적 평가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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