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행복이 가득한 집] 짓기 붐
  • 宋 俊 기자 ()
  • 승인 1998.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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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윤택하게 만드는 설계 줄이어… “좋은 집 지으려면 좋은 건축가 찾으라”
굳이 남 진의 노랫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림 같은 집’을 꿈꾸는 사람들의 갈망은 더없이 느껍고 간절하다. 경제난으로 주춤해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 들어선 목조 주택 마을이나 수도권 일대의 전원 주택이 좋은 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보기에 이는 ‘집’이 아니다. 집의 허울을 쓴 ‘텅 빈 공간’이다. 하물며 허울마저 황량한 아파트며, 개성 없이 서로 닮은꼴로 지어진 단독·연립 주택들이 집으로 인정받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대다수 국민이 살고 있는 지금의 공간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총체적인 ‘집의 아노미’다.

도대체 집이란 무엇인가.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건축 문화의 해’에 즈음하여 <시사저널>은 집의 참뜻과 의의를 기초부터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건축가의 작품 가운데서 삶을 풍요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설계를 중심으로 살폈다. 해외 출장 등으로 빠진 작가도 여럿 있음을 밝힌다. <편집자>

30대 후반의 출판인 임종기씨는 최근 ‘林居堂’ 상량식을 올렸다. 맞벌이로 모은 전재산으로 경기도 일산에 지은 집이다. 대지 70평의 3분의 1을 정원으로 꾸몄다. 지하 1층 지상 2층 높이를 반 층씩 엇갈리게 배치한 6층 건물에 방이 4개. 안방, 부모님 방, 아이들 방과 서재다. 지하까지 볕이 들도록 설계했고, 지붕에도 창을 내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다.
임거당의 가장 큰 특징은 집 안팎으로 다채롭게 연결되는 계단과 복도, 그리고 그 ‘미로’의 모퉁이마다 자리한 크고 작은 7개의 마당이다. 임씨가 소망했던 ‘길이면서 놀이터이고 마당인 자연 공간’이다. 눕고 기대고 책 읽고 사색하는 ‘멋대로’의 장소다. 예닐곱 사람이 모여 작은 공연을 벌일 수도 있다. 이 여백의 공간들을 갈무리한 집의 중심 부분은 지붕을 덮지 않았다. 눈·비를 직접 맞기 위해서다. “어디가 시원하고 어디서 빛이 반사되며 빗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곳은 어디인지, 집의 비밀을 알아 가는 재미로 살 작정이다. 집안에서 눈사람 만들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임거당은 건축가 김효만씨의 작품이다. 김씨는 줄곧 건축의 외부와 내부를 교차시켜 사람의 관계를 최대한 북돋우는 질적 공간을 추구해 왔다. 지난해 완공한 ‘학익재’(일산)는 공간을 시원시원하게 쓰면서, 역시 복도·계단·정원으로 삶의 탄력을 도모하도록 설계했다. “살면서 은밀한 기쁨을 찾아내는 것은 건축주의 몫이다. 건축은 당대의, 그러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안하는 공간 형식이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건축가 배병길씨도 외부 공간을 중시한다. 계단·베란다·회랑 등으로 집 안팎을 넘나드는데, 그 과정에서 삶의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거나 안으로 수렴하는 효과를 낸다. 예컨대 최근작 ‘은둔의 집’(일산)은 정서를 차분하게 모아 주는 경우다. 마당을 에두른 ㄷ자형 주택의 지붕선과 계단·베란다 등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한 시각 효과를 일으켜, 사람의 서정을 자연스레 집 중심의 넉넉한 공간에 연착륙시키고 있다. 화랑 건축으로 유명한 배씨는 공간 분할의 미학이 탁월하다. “집의 성격이 사람의 심성을 좌우한다. 열린 구조, 아름다운 양식 안에서 자란 사람은 포용과 이해의 폭이 훨씬 크기 마련이다”라고 배씨는 믿는다.
‘부동산 상품’과 ‘집’의 차이점

거개의 건축가는 집에 모종의 기호를 안배한다. 그 집에서 살아 보기 전에는 느낄 수 없는 장치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집장사의 ‘부동산 상품’과 ‘집’이 변별된다. ‘상품’은 불도저로 깨끗이 밀어낸 평지 위에 사각형을 몇 갈래 평행으로 쪼갠 설계로 들어서고, ‘집’은 울퉁불퉁한 원래의 땅(나무·돌·물이 있는 그대로)에 최대한 조응한 순리적인 설계로 세워진다.

‘상품’의 설계도는 대체로 거실·주방으로부터 최단거리에 여러 방의 문을 배치한다. 문을 닫으면 그뿐, 방안 가족과 밖의 가족이 눈빛을 나눌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 구조가 비슷하다 보니 건물 외형이 강조된다. 목조 주택이나 ‘빨간 벽돌집’이나 공사 방식과 재료만 다를 뿐이다.

문제는 ‘그래도 좋기만 하다’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를테면 ‘가짜[疑似] 행복’이다. 다른 사람보다 ‘예쁜 집(비싼 집)’에 산다는 우월감의 심리적 변형인 것이다.
건축가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도 세태를 고착화하는 데 한몫을 했다. 무엇보다 ‘건축가가 지으면 비쌀 것’이라는 선입견이 주요 장애 요인이다. 사실 70∼80년대까지 건축가를 찾은 사람은 대부분 졸부거나 예술가·교수였다. 그렇지만 이같은 ‘귀족 건축’의 추세가 90년대 중반 들어 뚜렷이 변화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장 건축가들이 대거 현장에 뛰어들고, 전원 주택 붐과 맞물려 ‘비귀족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호사를 부리지만 않는다면, 집장사 건축비보다 10∼30% 가량 높은 가격으로 건축이 가능하다. 게다가 설계의 질과 내구성, 한결 비싼 집값·전세값을 감안하면 계산법이 한참 달라진다.

서민용 건축에서 보람을 느끼는 건축가도 적지 않다. 조병수씨는 ‘오히려 달동네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며 93년부터 워크숍 팀을 이끌고 서울 정릉·신당동·창신동을 누볐다. 대지 15평·25평·35평짜리 ‘코딱지 공사’에 더 적극적이었다. 공사비 백만원도 언감 생심인 판잣집 주인을 설득하고, 요령 좋은 시공자를 물색해 ‘먼저 공사한 뒤 전세금으로 비용을 빼가라’고 권유하는 식이었다. 조씨의 건축은 밝고 간결한 실용적 절제미, 불량 시공자와 일전을 불사하는 완벽주의, 달동네에서 부촌 저택가를 두루 녹여내는 분방함으로 특징지어진다.

‘채 나눔’ 철학으로 널리 알려진 이일훈씨도 서민용 공동 주택에 깊숙이 뛰어든 건축가다. 채 나눔이란 말 그대로 집채를 잘게 나눈다는 뜻이다. 쪼개야 여러 공간에 빛·바람·여백 따위가 고루 공급된다고 이씨는 믿는다. 근작 ‘家街不二’(서울 등촌동)는 집과 길, 그리고 도시가 따로 놀지 않는다는 외침이다. 44평 대지의 중앙을 썩뚝 동네 골목 겸 아이들 놀이터로 내어주고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 주택을 올렸다. 세입자의 독립성을 한껏 보장하면서 이웃의 훈훈함을 느끼게 안배한 구조다. 한낮이면 집안 가득히 소쇄한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건축가를 택할 때, 그리고 협의할 때 이처럼 까다로워야 하는 까닭은 설계가 건축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교과서대로라면, 건축 부지의 지형과 여건을 감안해 설계하고 설계에 맞추어 집이 올라가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국내 주택의 태반은 순서가 거꾸로다. 먼저 택지를 조성하고, 그 다음에 건축 설계를 하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다.

이 과정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허가방’이다. 허가방은 구청 앞에 바글거리는 설계 사무소의 별명이다. 예컨대 건축가는 주택 한 채를 짓는 데 두세 달에 걸쳐 설계도면을 보통 50∼1백장 그린다. 구상도·스케치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여성지 두께만큼 그리기 십상이다. 구상하다 버린 모델의 경우를 빼고도 그렇다.

그러나 허가방은 ‘슈퍼맨’이다. 이곳에서는 건축주(혹은 시공자)의 의뢰를 받은 지 3∼7일이면 거뜬히 설계 허가를 받아낸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허가에 필요한 도면 6∼7장만을 벼락치기로 급조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도면으로는 정보가 부족해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만큼 대충 공사하는 시공자가 많다는 얘기다. 심지어 공사 일꾼 상당수가 도면조차 볼 줄 모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사가 부실일 뿐 아니라, 훗날 집을 고치려 해도 설계와 딴판이어서 속수무책인 것이다.
“뜻 맞는 사람에겐 공짜 설계 해주겠다”

이렇게 지어진 ‘텅빈 공간’들이 거리 풍경을 한껏 어지럽혀 놓은 것이 오늘날 한국의 건축 실태다. “건축은 시대의 생활상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 건축가는 바람직한 생활상과 그릇, 두 가지를 다 빚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라고 건축 비평가 이주연씨는 말했다.

와중에 두 ‘고수 건축가’가 보여주는 시도들은 강한 토속 향기를 풍긴다. 건축가 정기용씨는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최근 ‘흙 건축’에 심취해 있다. 지금 작업하는 건축은 전북 무주 진도리 생태 마을의 마을회관. 담틀을 세우고 그 안에 흙을 넣어 다지는 전통 토담집 공법을 되살린 것이다. 농촌 생활의 여유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건축가 원대연씨는 충북 진천에 농촌 주택 ‘상촌재’를 짓고 몸소 생활하며 나름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상촌재는 옛 농가의 기능을 현대적 삶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 원씨의 머리 속은 폐타이어, 채석장의 폐석 등 싸구려 자재들을 활용할 궁리로 가득차 있다. 특급 호텔 등 최고급 건축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가 최저가 자재를 주목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원씨는 상촌재 주위에 상촌재의 특징을 살린 미술관·도서관·숙소 등으로 마을을 이룰 생각이다. “뜻 맞는 사람에게는 돈 안받고 설계해 줄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마을이 생겨난다면 이 시대 건축의 한 전형이 되지 않겠는가.” 이 계획이 성공하면 강원도에 귀틀집·너와집을 원용한 마을, 제주도에 토속 건축의 멋을 되살린 마을들을 힘닿는 데까지 해보자는 것이 원씨의 포부다.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건축 바로 세우기’의 걸음은 이렇게 진전되고 있다. 건축가 이일훈씨는 “로마도 당대 주민들의 건축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짓는 건축은 미래의 문화재다. 적어도 건축하는 자세는 그래야 한다. 그래야 후손에게 최소한의 도시 풍경을 물려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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