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어른 동화 ‘틈새 장르’로 자리매김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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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동화 ‘틈새 장르’로 자리 매김…시적 상상력으로 자아·세상 새롭게 관찰
바람은 <연어>에서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 어른과 동화(童話)가 서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는 최근 독자들에게 각광 받는 장르로 떠올랐다. 최근 들어 잇달아 화제작이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96년 <연어>에 이어 올 초 <관계>(이상 문학동네)를 발표한 안도현씨와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해냄)의 정호승, <은행나무 이야기>(문학동네)의 김진경, <만남-은어와 보낸 하루>(생각의나무)의 원재훈 씨 등 어른 동화를 펴낸 이들은 대부분 시인이다.

잠언은 필수…단순한 틀로 전개

안도현씨는 <관계>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여기에 묶은 글들은 소설과 동화와 에세이와 시의 중간 어디쯤을 들락거리고 있는, 그러나 그 어디에도 소속되기 싫어하는 욕심의 산물입니다. 혹여나 이 가운데 어떤 글이 소설과 동화와 에세이와 시의 어느 한쪽에 몸을 기대고 있다면 그 미세한 한복판을 적중시키지 못한 나의 불찰 때문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요점은 그 상하 좌우의 한복판입니다.’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으니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름이나 ‘서정 소설’ ‘생각하는 동화’ ‘철학 동화’ 따위 생경한 이름이 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른 동화의 형식과 내용은 한국 독자에게 퍽 익숙하다. <어린 왕자>를 비롯한 외국의 어른 동화들이 폭넓게 읽혀 왔기 때문이다(81쪽 상자 기사 참조).

안도현 시인이 <어린 왕자>를 모델로 삼아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다고 밝혔듯이, 최근에 등장한 대부분의 어른 동화들은 <어린 왕자>와 유사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어른 동화에는 시나 소설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그림은 글에 딸린 요소가 아니다. <은행나무 이야기>의 표지에는 ‘김진경 글 이희재 그림’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그림이 글을 장식하거나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나름으로 뚜렷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그림은,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상상하는 풍경을 구체화하기도 하고, 그 상상력을 더욱 증폭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림과 더불어 어른 동화에는 예외 없이 잠언이 들어 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자꾸 작은 방에 가두는 일인 것 같기도 했지요.’ (<만남-은어와 보낸 하루>) ‘우리가 정말 절망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삶 속에서 작은 약속들이 깨질 때야. 큰 약속이 깨지는 것 때문에 정말로 절망하지는 않아.’(<은행나무 이야기>) ‘얘야.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라. 실패에는 성공의 향기가 난단다.’(<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 ‘외로움은 두려운 게 아니라 슬픈 것이다.’(<연어>)

글의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이같은 잠언들은, 독자의 머리에 줄거리보다 더 선명하게 각인된다. 원재훈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이런 글에서 시적인 잠언은 필수이다.”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내용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소설과 달리, 어른 동화들은 대개 단순한 틀로 짜여 있다. 짤막한 잠언들은 독자들의 정서를 단번에 휘어잡는 힘을 갖는다. 어른 동화가 가진 중요한 무기인 것이다.
대부분 성장 소설의 성격 띠어

어른 동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시적 상상력과 서정성이다. 시인들은, 시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표현할 수도 없는 시적 상상력을 어른 동화에 펼쳐 놓는다. 어른 동화들은 대개 시가 산문적으로 퍼져 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는 아니지만, 이런 글에서는 시적인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김진경씨는 말했다. 어른 동화의 압축된 대목을 만나면 긴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른 동화의 또 다른 생명력은 서정성에서 나온다. “서정성에는 영원성이 있다”라는 정호승 시인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기는 서정성밖에 없다고 말했다. ‘살을 에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어 왔다. 어린 매화나무는 너무나 추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눈물은 겨울 바람에 금세 얼어 버렸다.’(<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

서정성이 모든 어른 동화를 관통하고 있는 만큼, 어른 동화에서는 느낌 마음 감정 사랑 기쁨 슬픔 같은 어휘가 자주 등장한다. 느낌과 감정의 반대편에 있는 지식과 이성은 세상과의 진정한 대화를 가로막는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느낌을 공유하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우린 지금 여기에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그런데 왜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려고 이리도 애쓰는 것일까. 네가 나를 만났을 때에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느낄 뿐이잖아. (…) 난 조금 무서웠지만 당신의 몸에 기대어 눈을 감았어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분명 눈을 감았는데 밝아졌어요.’(<만남-은어와 보낸 하루)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눈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도 많단다. 나무에 손을 대면 느껴져. (…)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깜짝 놀랐어.’(<은행나무 이야기>)

어른을 위한 동화들은 ‘어른을 위한’다고 하지만 대개 성장 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어른 동화는 사물이나 동·식물 들을 의인화해 자아를 발견하거나,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연어>는 연어가 산란을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쉬운 길을 가지 않는 연어가 아름다운 연어라고 생각’하고 폭포를 뛰어오른 뒤 ‘거룩한 죽음’을 맞는 광경으로 끝을 맺는다. <만남-은어와 보낸 하루>는 전생에 은어였던 주인공이 섬진강 가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도 타조·문어·백조·고슴도치 들을 등장시켜 세상과 화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짤막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은행나무 이야기>는 광주항쟁을 지켜본 거리의 아기 은행나무가 성장의 고통을 딛고 ‘황금빛 불꽃’을 피우는 과정을 그렸다. ‘그 황금빛 불꽃은 모든 이야기를 뛰어넘으면서도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분노, 슬픔, 사랑, 아픔, 환희… 그 모든 감정을 뛰어넘으면서 그 모든 감정을 녹여 안고 있었다.’

최근에 무리를 지어 등장한 어른 동화들은 하나의 장르로 독립해 가고 있다. 그동안 시·소설·평론으로 엄격하게 구획된 문학 장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틈새 장르’로서, 시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인들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새로운 형식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의 연성화’라는 비판받기도

시인·소설가·평론가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다른 장르를 거의 넘보지 않았다. 시인이 소설을 쓰는 등 장르 간의 벽이 무너진 것은 90년대 들어서이다. 게다가 시인·작가 들이 분단·통일·민주화 같은 거대 서사와 맞상대해야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대에는, 어른 동화 같은 감성적인 장르가 생겨날 여지가 없었다. 작가들이 눈을 돌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허튼 짓 한다’는 비난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어른 동화의 물꼬가 트인 데에는 독자들의 독서 성향, 다시 말해 무겁고 심각한 것보다는 가벼운 문화를 선호하는 경향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문학의 연성화’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어른 동화는 새로운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독자를 만들고 장르의 폭을 넓혀가는 긍정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시인들은 독자층을 어른에 국한하지 않는다. 동화를 떼고 나면 읽을거리가 전혀 없는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인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적 상상력이 산문과 만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 상당한 독자들이 있었음에도 그동안 동화작가나 작가 들이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장르는 어른이나 어린이나 모두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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