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혼자 사는 세 여자>
  • 이영미 (연극 평론가) ()
  • 승인 199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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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배우를 돋보이게 해주는 연극이 있다. 연극 전문인들 중에는 연출이 돋보이는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반 관객들은 대개 자신이 동일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인간’, 즉 배우를 중시한다. 확실히 연극이라는 예술은 배우 보는 맛으로 본다. 영화처럼 카메라로 걸러서 보여 주지 않는, 그 사람 전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바로 그 맛이야말로 연극의 가장 원초적인 재미이다. 그래서 배우가 돋보이는 연극은 편안하고 대중적이다.

국립중앙극장과 현대예술극장이 공동으로 주최한 <혼자 사는 세 여자>(이반 멘첼 작·정일성 연출)가 대중적이고 편안한 연극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배우를 보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특성은, 원로 배우 백성희의 ‘연극 50년 기념 공연’인 이 공연의 취지에 합당하다.

관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년 주부 관객(관극 경험이 많지 않은)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이유에는, 이 극이 평이하고 단순하면서도 균형 있게 짜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몇 년 사이에 과부가 되어 버려, 이른바 ‘묘지클럽’을 만들어 매달 함께 남편의 묘지에 가는 50대 과부 아이다(백성희), 루실(김금지), 도리스(윤소정). 도리스는 검은 옷만 입고 사는 수절파, 루실은 과부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남자에게 웃음을 흘리며 살아가는 바람파, 아이다는 옛 남편을 잊지는 못하지만 묘지에만 매어 사는 삶을 청산하고 싶어하는 갈등파. 이같은 배치는 상투적이리만큼 정형적이다. 당연히 갈등파 아이다에게 홀아비 샘(이호재)이 나타나고 그들은 사랑에 빠지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루실과 도리스가 악의 없이 방해한다. 우여곡절 끝의 결말은 당연히 아이다와 샘이 사랑을 성취하는 것이다.

자칫 진부한 대중극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이러한 틀에, 매우 평범하지만 꽤나 진한 삶의 냄새를 담고 있다는 점은, 주부 관객을 쉽게 공감으로 이끄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이 작품의 재미는 그저 아이다와 샘이 짝짓는 과정의 우여곡절을 즐기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만으로 보자면 싱겁기 그지없다. 이 작품의 더 큰 재미는 삶을 절반 이상 살아 버리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중·노년층 주부들이 겪게 되는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극의 후반, 수절파 도리스가 술김에 자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젊음과 활기와 열정을 드러내고, 루실이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 웃음을 흘리고 다녔지만 도저히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가히 절정이라 할 만하다. 멀쩡하던 도리스가 밤 사이에 죽고, 아이다는 결혼을 결정하고, 루실이 혼자 남는다는 마지막 결말 역시 중·노년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강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해피 엔딩의 상투성을 벗어나고 있다.

세 배우는 각기 다른 질감을 지니고 있으나, 모두 50대 이상이라는 점에서 원숙함과 연기의 실감을 더해 주어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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