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에밀레종:한국 고대 회화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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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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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까지 흔적, 유물 통해 보여줘
이화여대박물관은 고려대박물관과 더불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한국에 흔치 않은 대학 박물관으로 꼽힌다.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두 박물관은 그 전 해 연구 성과를 전시를 통해 펼쳐 보이는데, 빼어난 소장품과 수준 높은 기획으로 그동안 호평을 받아왔다.

이화여대박물관이 올 봄 특별전으로 내놓은 <에밀레종:한국 고대 회화의 흔적>(3월2일~6월30일 ·02-3277-3676)도 참신한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회이다. 이 전시의 출발점은 '조선 시대 이전의 회화는 어떠했을까'라는 의문이다. 그림이 주로 종이와 비단에 그려지는 까닭에, 고려 시대 까지의 회화는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삼국 시대 고분 벽화와 고려 불화(佛畵)가 그 시대의 수준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에밀레종 ···>은 고대 회화의 흔적을 유물에서 찾았다.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시작으로 청동기 시대의 기하문 청동기 ·반구대 암각화, 삼국 시대 12지신상, 고려의 장신구 들에 새겨진 그림을 모아 선사 이래 한국 회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전시회에 나온 작품은 1백50여점. 이화여대박물관이 소장한 희귀 탁본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만들어 마치 회화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은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된 봉덕사 선덕대왕 신종(에밀레종) 탁본이다. 높이 3m에 이르는 이 종에는 악기를 들고 구름에 올라탄 형상을 한 비천상(飛天像)이 새겨져 있다. 7세기 한국 인물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비천상은 신성하고 기쁨에 겨운 모습, 곧 종이 울리면 비천상이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춤을 추며 내려올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소리와 그림이 한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전시가 유물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하는 점은, 한국 회화의 유구한 전통이다. 조선 시대 책거리와 보자기에 연결되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전통이 한 줄기를 이루고, 조선 후기의 풍속화로 이어지는 구상적이고 사실적인 회화가 또 다른 줄기를 형성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조선 시대 이전에도 대단히 뛰어난 회화 전통이 있었다는 점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전시는 한국 미술사에 있는 틈을 메우려는 시도이자 노력이다"라고 장남원씨(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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