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신라 '흙 인형' 의 아름다운 부활
  • 경주·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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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토우展>, 성·동물 묘사한 3백50여 점 전시…1천5백년 전 생활상 생생히 보여줘
이땅의 옛 생활 문화가 1천5백년 만에 부활했다. 고기잡이하고 사냥하는 노동 현장뿐 아니라, 남녀가 성교하고 여자가 출산하며 아내가 남편의 주검을 앞에 두고 비통해 하는 모습 들이 드라마틱하게 재현되었다. 2월28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0561-772-5194)에서 열리는 <신라 토우-신라인의 삶, 그 영원한 현재展>은 천년이 넘도록 묻혀 있던 생동감 넘치는 신라인들의 삶을 복원했다.

토우(土偶)란 시신과 함께 무덤 속에 넣었던 흙인형이다. 이 전시에 나온 신라 토우는 모두 3백50여 점. 국립중앙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과 이화여대·경북대·영남대 박물관 등이 소장하던 토우 가운데 전시가 가능한 것들을 모두 모았다. “전시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과연 전시회가 가능할까 회의했다”라고 경주국립박물관 강우방 관장은 말했다. 그러나 한군데 모아 정리하고 분류하니, 토우는 엄청난 위력을 발산했다.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옛날로 거슬러올라간 듯, 신라 시대 생활상들을 속속들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토우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6년 경주역 철도 공사 현장에서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체계적으로 발굴해 유물을 수집·정리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파편을 주워 모으는 데 그쳤다. 그 이후에도 토우는 존재 자체만 개략적으로 소개되었을 뿐이다.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성격을 규정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제·고구려에 없는 독특한 예술품

토우는 사람뿐 아니라, 멧돼지 개 말 노루 호랑이 같은 길짐승과 독수리 갈매기 매 앵무새 호반새 가마우지 두루미 고니 원앙 올빼미 닭 같은 날짐승도 묘사하고 있다. 마치 신라 시대 동물 도감을 펼쳐놓은 듯 가재 게 잉어 불가사리 말뚝망둥어 같은 물고기에 거북 자라 같은 파충류까지 망라되어 있으며, 이 땅에는 살지 않는 원숭이 개미핥기 물소와 상상의 동물인 용까지 나타나 있다.

토우는 토기에 붙은 것과 따로 제작된 두 종류로 나뉜다. 토기에 붙어 있던 토우들은 토우 장식 항아리 등 몇몇 유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에서 떨어진 채 전해졌다. 그 높이는 작게는 3∼4㎝, 크게는 20㎝에 이른다. “작은 토우는 인간의 삶을 섬세한 손끝으로 절묘하게 빚어내고 있다. 토우는 대부분 어린이와 여인 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남자의 거친 손길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솜씨이다”라고 강관장은 말했다.

백제와 고구려에 없는 신라만의 유물인 토우의 양식은 단순하다. 생략이 대담하고, 묘사하는 대상의 특징을 과감하게 강조했다. 투박하고 치졸하고 한편으로 익살스럽기까지 한 양식은,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힘이 넘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예전에 동물·물고기 정도로만 알려졌던 갖가지 어류가 그 이름을 모두 찾았다. 생물학자들이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그 특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성 행위 충격적으로 묘사

단순함의 힘은 특히 남녀의 성기(性器)와 성교(性交) 토우에서 충격적으로 드러난다. 남녀 모두 성기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으며, 성교 장면은 신체를 단순하게 처리하고 얼굴 세부를 생략한 채 그 행위만을 적나라하게 강조했다. 포르노 잡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체위를 표현한 토우와 배 위에 누워 마치 수음을 하는 듯한 토우까지 있다. 전시 도록에 들어 있는 <신라토우論>에서 강우방 관장은 ‘이렇게 단순한 인체 표현에 어떤 도구를 사용해 눈과 입만을 단순하게 나타내면서 성교의 희롱을 익살스런 표정으로 살려낸 것은 감탄할 만하다. 더구나 엎드린 여인의 궁둥이만은 진흙으로 빚어 만들 때 물로 한번 더 발라서 표면을 매끄럽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라고 썼다.

이 전시가 딸린 제목을 ‘신라인의 삶, 그 영원한 현재’라고 붙인 까닭은, 일을 하거나 사랑을 나누는 신라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날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관장 해석에 따르면, 토우는 현실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토우를 무덤 부장품으로 넣음으로써 현실의 풍요한 삶이 내세에서도 그대로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신라인들의 긍정적인 세계관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뱀이 개구리 뒷다리를 문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강관장은 ‘뱀과 개구리는 공통적으로 풍요·다산·재생·영생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여러 상징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신라 토우는 한국 조각의 첫 장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러 단순한 순장품인 토용(土俑)으로 계승되면서 신라 토우는 그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토용은 일상의 생생함을 표현하지도 않았으며, 당나라의 영향으로 당의 궁인·궁녀 복식을 하고 있다. 토우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17∼18세기에 불꽃처럼 솟아올랐던 조선 진경산수와 더불어, 토우에는 외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이 땅에서 자생한 한민족의 고유한 예술 정신과 삶이 순수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다. “토우의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표현 양식은 후대에 이르러 조선 시대 민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라고 강관장은 말했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한국 회화사의 첫머리를 장식했다면, 신라 토우는 한국 조각의 첫 장을 열었다. <신라 토우-신라인의 삶, 그 영원한 현재전>은 한국 문화의 원형 가운데 하나를 밝혀놓은 셈이다. 그 원형은 미술사뿐만 아니라 역사학·고고학·민속학·음악사·복식사·사회사·종교사·생태학 등 모든 연구 분야의 보고이다. 이같은 연구가 깊어진다면, 명랑하게 살아온 한민족의 자화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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