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터넷 서점, 제2전선 열린다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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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점ㆍ벤처 기업가ㆍ출판인 다투어 진출…전망 밝지만 '제 살 깎기'경쟁 우려
운동권 출신으로서 한때 시사 월간지<말>의 기자로 일했던 조유식씨는 최근 취급 도서 20만종을 자랑하는 '대형서점'의 사장으로 변신했다.그러나 조씨가 운영하는 서점 모습은 일반 서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씨의 서점에는 매장도 없고, 책도 없고, 손님도 없다. 단지 가상 공간에 고객들에게 책 정보를 띄우고 주문을 받기 위한 컴퓨터와, 서울 충무로의 한 상가 건물에 이들 컴퓨터를 설치할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마련했을 뿐이다.

약 7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7월7일 간판을 내건 조씨의 서점 이름은 '알라딘'. 이른바 인터넷 서점이다. 자신을 빼고 직원이 7명에 불과한 서점 주인답지 않게 조씨의 포부는 크고 야무지다. '1년 안에 가상 공간에서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 인터넷을 누르고 업계 1위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조씨는 이것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장담한다.

서울 마포구 고려아카데미텔 17층 한구석에 지난 사무실을 차린(주)북토피아.김영사ㆍ나남ㆍ문학동네ㆍ사계절ㆍ시공사ㆍ열화당ㆍ창작과비평사ㆍ한길사 등 국내의 손꼽히는 출판사들이 망라된 한국출판인회의가 공동 설립한 이 회사 역시 주요 사업 분야는 인터넷 서점이다.

검색 방식 차별화 등 기선 잡기 묘안 백출

한국출판인회의는 97년 말 IMF충격으로 대형서적 도매상이 잇달아 부도를 내자 이 여파에 시달리던 단행본 출판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 창립하자마자 공동사업위원회를 만들고 이 사업을 서둘렀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지식ㆍ정보 산업의 꽃인 출판이 처질 수 없다'고 외치는 이 회사는, 오는 10월 인터넷 서점 정식 개설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출판계와 서점가에 인터넷 서점 바람이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종로서적ㆍ영풍문고ㆍ교보문고 등 국내 굴지의 대형 서점들 외에, '사업성'을 확인한 몇몇 벤처 기업가들, 그리고 '생산자'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유통업자'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려는 출판인들이 다투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출판 유통계가 지각 변동이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의 인터넷 서점 시장 규모는 매출액이 매년2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선두 주자는 단연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들이다. 특히 교보문고의 인터넷 서점은 월 매출액이 3억원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자체 운영해 온 교보문고북클럽 제도를 기반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현재 회원수는 25만 명 정도다. 이 중75% 정도가 전화 주문 대신 인터넷을 이용해 책을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 교보문고 관계자의 얘기다. 종로서적ㆍ영풍문고 등 다른 대형 서점들도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며 교보문고의 뒤를 바싹 쫓고 있다.

예스24ㆍ인터파크(북파크)ㆍ알라딘 등은 개인 사업자나 일반 기업이 인터넷 서점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새롭게 시장에 진출했거나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경우다. 예스24는 원래 한 대학원생이 책 소개ㆍ서평 등을 하며 운영해온 개인 홈페이지(다빈치로 잘 알려짐)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12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내고 서점으로 전환한 이 회사는 지난 4월 도서 정보량을 대폭 확충해 본격 경쟁에 나섰다. 데이콤이 운영하는 북파크 역시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하는 등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가장 최근 문을 연 알라딘의 경우, 총 보유 도서량이 20만종으로 대형 서점의 정보량에 뒤지지 않는다. 경쟁 대열이 한켠에는 인터넷 서점의 대명사 격인 아마존과 손잡고 주로 해외 서적을 들여다 파는 삼성쇼핑몰이 있다.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손님 끌기와 시장 선점을 위한 각 업체의 묘안도 백출하고 있다. 알라딘은 검색 기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지금까지 일반화한 방식은 책에 대한 정보를 제목ㆍ저자 이름 별로 찾도록 하는 것이었다. 알라딘은 이를 '주제어'로도 검색할 수 있게 했다. 이 업체 조유식 사장은 "주제어와 주제어를 결합해 교차 검색도 가능하다. 따라서 알라딘 사이트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도서관 구실도 한다. 검색 기능으로만 따지면 웬만한 공공 도서관보다 낫다"라고 자부한다.
컴퓨터 전문 서적만 판매하는 와우북은 한 분야를 전문화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업체다. 서울 강남에 컴퓨터 전문 서점도 운영하고 있는 이 업체가 인터넷 서점 문을 연 지는 1년 남짓이다. 월 매출액이 천만원 이상, 회원 25만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인터넷 서점 교보문고가 월 3억원대 매출을 내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이 업체가 성공한 비결은 철저한 전문화 전략이었다. 강기춘 고객지원실장은 "우리 서점의 도서 정보량은 컴퓨터 서적만 만 종 이상이다. 일단 우리 서점에만 들어오면 웬만한 컴퓨터 관련 책 정보는 모두 검색해 볼 수 있다"라고 자랑한다.

인터넷 서점은 유통업자나 구매자 모두에게 매력있는 사업이다. 유통업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매장이 필요 없이 엄청난 분량의 서적을 한데 모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구매자들은 직접 서점에 나가지 않고서도 원하는 책을 사무실이나 집에서 쉽게 사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대한 책 관련 정보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특히 유통업계 처지에서 볼 때 비용 절감은 획기적이다. 기존 서점을 기준으로 할 경우, 20만종이상 서적을 진열하려면 최소한 천평 정도의 매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 데이터 베이스만 구축하면 컴퓨터 몇 대로 이같은 규모에 맞먹는 서점을 차릴 수 있다.

독자 참여 통한 대화공간으로도 활용

독자 또는 구매자 처지에서 보면 서점은 구매하기 편리한 것 외에 정보 공유 또는 대화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각 업체들은 인터넷 서점에 '독자 서평' '작가와의 대화'등을 설치해 독자 참여를 높이고, 독자 간의 상호 교류(인터액티브)를 가능케 하는 각종 장치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은 이같은 다양한 가능성과 함께 역기능의 소지도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할인율, 배송 비용 절감, 배송 시간 단축 등이 이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인터넷 서점은 대개 고객이 주문한 책을 택배나 우편으로 보내는데, 배송 비용을 자신이 부담한다. 일부 업체들이 외형적으로는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는데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게다가 경쟁이 본격화하면, 업체간 경쟁 양상이 서비스 경쟁이 아닌 책값 할인 경쟁으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출판업계는 또 한번 '제살 깎기' 경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북토피아 손형민 상무이사는 "인터넷 서점은 그동안 출판업계의 고질이었던 어음 거래 관행을 끊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이 심해질 경우 유통업체가 책 판매 대금을 출판사에 현금으로 주는 대신 더 높은 할인율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출판계는 또 혼란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출판업자(또는 생산자)처지에서는 인터넷 서점이 출현함으로써 소형 서점이 몰락할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미국에서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등장한 이후 전체 소형 서점(동네서점)의 40%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소형 서점 몰락은 또 다르너 '유통 대란'으로 옮아 붙을 수도 있다고 일부 출판업자들은 걱정한다. 이에 대해 업체들은 인터넷 서점 고객과 기존 서점의 고객 구성이 다르고, 따라서 인터넷 서점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점을 들어 '괜한 걱정'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이들은 인터넷 서점 사업이 활성화한 이후에도 출판 시장이 위축되지 않고 있는 미국 상황을 그 근거로 든다.

인터넷 서점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는 이처럼 각자의 처지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생산자든 유통업자든 누구나 동의하는 사항이 있다. 인터넷 서점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며, 그 결과 국내의 출판ㆍ유통 지도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인터넷 서점은 출판업계가 싫다고 외면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이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현실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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