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음악] 일곱빛깔 스펙트럼, 모던 록
  • 성기완 (음악 평론가) ()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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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루시드 폴' '넬' 등 음반으로 새 흐름 형성

서태지를 핵으로 하고 있는 하드 코어 계열의 강력한 록음악이 록 팬들의 시야를 많이 접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10대 록 팬들 위주로 바라볼 때 하드 코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난 겨울에 어느 청소년 대안 교육단체가 주최한 일종의 '록음악 경연대회'에서 심사를 해본 결과 출품작들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하드 코어적인 발상이 거의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사진설명 파격 : 읊조림에 가까운 음악을 선보이는 '레이디 피쉬'. 뇌 속의 뼈아픈 상념을 그대로 끄집어낸 것 같은 호소력을 지닌다. ⓒ쌈지스페이스 '바람'

그러나 같은 록음악이라도 하드 코어와는 음악을 하는 태도와 결과적으로는 색채감이 좀 다른 음악들도 존재한다. 그 음악들은 이른바 '모던 록'이라는 범주로 몰아넣을 수 있는데, 실은 모던 록이라는 낱말이 적확해서 사용한다기보다는 다른 마땅한 낱말이 없어서 그냥 모던 록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모던 록은 하드 코어보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적고, 따라서 덜 충격적이고, 그래서 매체의 조명을 받기도 그리 쉽지 않다. 뭔가 주목할 만한 거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변에 모이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이런 방식을 택하는 밴드, 혹은 솔로 뮤지션들이 음반을 여럿 냈다.

예전에 '미선이'라는 인디 밴드를 결성하여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상당한 팬층을 확보한 조윤석이 새로운 프로젝트 그룹 '루시드 폴(Lucid Fall)'의 앨범을 선보였고, 1980년생이 주축이 된 젊은 록 밴드 '넬(Nell)'이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허클베리 핀의 남상아가 보컬을 맡은 '3호선 버터플라이'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그 규모와 일하는 방식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전형적인 인디 레이블이라 할 캬바레는 여성 뮤지션 '레이디피쉬'의 음반 <그로테스크 레볼루션>을 내놓았다. 그 이전에 캬바레는 '은희의 노을'이라는 밴드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또 순전히 자가 생산 방식을 취하는 인디펜던트 밴드 '잠'도 컴퓨터 사운드 카드로 녹음한 첫 앨범을 발매했다. 마이 앤트 매리의 리더인 정순용은 '토마스 쿡'이라는 1인 밴드를 만들어 음반을 발매했다. 메이저 판에서는 이상은 같은 가수가 새 음반을 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음악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일은 불가능할 뿐더러 어리석기까지 하다. 서 있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포크 계열 음악에서부터 노이즈가 자욱한 사이키델릭까지, 밴드들이 포괄하고 있는 음악적 스타일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 떠들썩하지 않게 어떤 '흐름'을 형성하면서 이 땅의 록 스펙트럼을 무지개 빛으로 수놓고 있다. 무지개 빛? 그렇다. 각자 묘한 자기 개성을 발휘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아름다운 부채를 펼치고 있다.

먼저 음악적으로 확 귀에 들어오는 것은 '루시드 폴'이다. 미선이의 조윤석과 엔지니어이자 레이블 사장님(라디오 레이블)을 겸하고 있으면서 음악 작업에도 종종 참여하는 고기모의 프로젝트 밴드인 루시드 폴은 특유의 서정적인 깊이를 지닌 음악을 내놓았다.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의 '어떤 날' 같은 팀이 가지고 있는 포크적인 서정을 계승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차원의 멜로디와 사운드 감각을 도입하고 있다.


포크적인 성격에서 사이키델릭까지


사진설명 맑은 서정 : 1980년대 포크의 정서에 록의 감성을 덧붙여 서정적인 모던 록을 만들어낸 '루시드 폴' ⓒ쌈지스페이스 '바람'

이들의 포크적인 모던 록을 들으면 평론가 김작가가 모던 록을 두고 한 말이 적절한 것임을 실감한다. 그는 "모던 록이 앞으로 대안 가요의 기능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 지적에 가장 잘 들어맞을 밴드가 바로 루시드 폴이 아닌가 싶다. '새벽녘 내 시린 귀를 스치듯/그렇게 나에게로 날아왔던 그대'라는 시적인 가사로 시작하는 <새>를 비롯해, 탄탄한 완성도를 지닌 노래 10곡을 선보이고 있다.

감상적이고 반복적인, 어떤 면에서는 약간 통속적인 멜로디에 신선한 매력을 불어넣고 그것들을 새롭게 지루하지 않게 배치하는 특별한 감각을 지닌 조윤석은 앞으로도 새로운 곡들을 많이 쓸 싱어송 라이터이다. 이들의 수준 높은 음악은 현재 인디 씬으로 팬층이 국한되어 있지만 대안 부재 상황인 한국 가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 예상된다.

루시드 폴이 조금은 성숙한 이미지라면 데뷔 음반을 발매한 '넬'이라는 밴드는 더 파릇파릇한 이미지의 모던 록 밴드이다. 음악은 '라디오 헤드' 같은 영국 모던 록의 영향을 받아 음울하고 내성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듣기에는 오히려 발랄하게 들린다. 그 젊은 날의 음울함을 천진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은 아직 덜 성숙했을지 모르나 노래를 구성·전개하는 능력은 나이답지 않게 탄탄하다.

라이브에서도 느껴지지만 변화 무쌍한 리듬의 굴곡을 조절하고 타이를 줄 아는 친구들이다. 너무 복잡하게 마음먹지 않고 담담하게 자기 음악을 천착한다면 미래에 훌륭한 앨범을 만들 잠재력을 지닌 밴드라 생각된다. 보컬을 하는 김종완의 리듬 기타와 리드 기타를 치는 이재경의 프레이즈가 대조적인 점도 재미있다. 김종완은 코드 분할을 기본으로 하는 반복적인 모던 록 프레이즈를 구사하고, 이재경은 상대적으로 솔로의 힘을 중시하는 플레이를 한다. 그들 둘의 대조법도 잘만 조화를 이루면 훌륭한 트윈 기타 체제로 귀결될 듯하다.

사진설명 1인 밴드 '토마스 쿡'이 공연하는 모습이다. '마이 앤트 매리'의 리더인 정순용이 만든 밴드이다. ⓒ쌈지스페이스 '바람'

루시드 폴이나 넬이 '가요적'이라면 레이디피쉬의 음악은 '비가요적'이다. <그로테스크 레볼루션>이라 이름 붙여진 데뷔 앨범은 한국 음반계의 풍토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레이디피쉬는 모든 곡을 만들었고 미디 기기·신시사이저를 다루어 곡들을 스스로 녹음했다. 거의 전곡이 영어 가사로 된 이 앨범은 비상식적인 노이즈가 날아다니고 특별한 멜로디도 없는 읊조림이 여기저기 흐른다. 그러나 그 느낌은 하드 코어처럼 파괴적이기보다는 사이키델릭하고 감상적이다. <그로테스크 레볼루션>은 총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으며 상처 난 자아의 지울 수 없는 기억들, 혼돈, 그 모든 것을 들추어 내고 때로는 아물게 하는 부르짖음, 기억 자체인 어떤 소음들, 여성적인 체념과 달램 같은 것들이 뒤섞인 상태를 들려준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뇌 속의 뼈아픈 상념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사운드.

꾸준히 인디 씬에서 활동하면서 스스로 앨범을 발매한 '잠'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들은 기타 중심적이지만, 기타를 다루는 방식이나 노래를 구성하는 법은 탈중심적이다. 이들 역시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밴드이다.

전체적으로 모던 록 계열 음악들은 음악적 풍부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듯하다. 조용해서 그럴까, 난해해서 그럴까, 아니면 별 것 아니라서 그럴까. 어쨌든 인디씬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그래도 다양한 실험들을 꾸준히 하고 있는 모던 록 계열의 뮤지션들이 존재하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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