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친구'
  • 이성욱 (문학 평론가) ()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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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사회적 의미 분석/
우정·의리 등 '사적 관계' 치중하는 한국 사회 맹점 드러내


부산에 관한 영화이니 부산의 시쳇말을 하나 해보자. '본토에서는 똥개도 50점 묵고 들어간다.' '타짜'에 대한 본토박이의 시위력을 뜻하는 말이거니와, 어떤 유리한 국면에 대한 통속 어법이다. 영화 〈친구〉는 이미 '50점 묵고' 들어가는 영화이다. 깡패와 친구에 관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서사물이 재미를 주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건이나 소재 자체가 흥미를 담고 있기에 생기는 재미이며, 다른 하나는 별 볼일 없는 사건이나 소재라 하더라도 그것을 조직하는 능력의 출중함 때문에 발생하는 재미이다. 대중 영화가 대개 전자에 귀속된다면 근대의 탁발한 소설들은 후자의 기준으로 그 등급을 가린다. 〈인간시장〉이나 〈밤의 대통령〉 같은 소설들이 수백만 권 팔린 까닭도 일상의 지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뒷골목이라는 이방의 공간이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고, 그 세계의 드라마는 범박한 일상인에게 일상 너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적당히 충족시켜 주는 대리 체험 기제이기에 그렇다.


점잖은 샐러리맨이 가끔 사창가나 도박장 등 양지 이면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리와 유사한 맥락이다. 때문에 마피아 같은 대규모 '조직'에 관한 영화든 소악배들의 악다구니에 관한 영화든 범죄 및 깡패와 관련된 영화라면 일단 관객 동원에 유리한 발판 위에서 출발할 수 있다. 〈친구〉는 그렇게 출발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에 '친구'라는 가속기를 하나 더 달고 출발한다.


영화사가 내놓은 광고에 따르면 이 영화의 모티프는 우정 그리고 의리이다. 맞는 말이다. 그에 따른다면 깡패라는 역할 모형은 단지 후경을 이룰 뿐이다. 이른바 아줌마 평론가들도 이런저런 글에서 친구의 우정과 의리를 부러워하며 여자들에게 그것이 부재함을 안타까워한다. 우정·의리 등은 정말 이 영화가 관객을 잡아당기는 빨판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 '친구'라는 단어의 울림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아주 강력하고 독특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맥·학맥 예찬, 발 너른 사람 영웅화와 같은 문맥


흔히들 경상도 남자들이 더하다고는 하지만, 한국 남자들에게 의리와 우정은 다른 그 무엇보다 항상 앞머리에 나서는 것이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된다. 그들에게 의리의 덕목을 갖추지 못한 자는 '고환'도 없는 놈으로 매장된다. 그래서 가정사보다 친구 만나는 일에 더 열중하는 남편에게 부산 아줌마들은 이런 지청구를 한다. "친구가 그리 좋으면 친구하고 살지 와 내카 결혼했노. 가서 느그 친구하고 살아라, 마."


친구의 우정, 포장한 말을 빌려 형제애는 우리만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다. 〈삼총사〉를 기억할 수도 있지만, 서양에도 형제애 앞에서 죽고 못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형제애를 모티프로 한 서사들은 20세기에 들어 거의 흔적을 감추었다. 자본주의적 인간 관계의 창궐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의 출현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랬다.


우리의 경우 우정·의리의 최상화는 여전하다. 믿을 것은 친구밖에 없다는 견고한 체험적 믿음 때문이다. 이 말은 슬프게도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 부재나 오작동의 반증 지표가 되기도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은 한 개인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기에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나제나 오로지 사적 관계에만 기댄다. 인맥·학맥의 과영양화와 발이 너른 사람을 영웅화하는 것도 그런 문맥이다.


관객에게는 단지 흩어진 점으로만 존재하는 과거의 기억을 하나의 줄로 질서 있게 꿰어주는 복고 서사 특유의 달콤함도 흥행의 한 요소이지만, 그것보다 자꾸 '친구'가 과잉 의미화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의 일그러진 초상이 영화에 대한 동일화를 부양하는 듯해 영 불편하다.





어느 날 가슴에 타로카드 한 장이 꽂힌 채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강간 살해 용의자로 지명되었지만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재력가의 아들이다. 곧이어 그가 살해되는 장면이 살인범이 개설한 것으로 보이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된다. 현실의 법으로 제재가 불가능한 사회의 쓰레기들을 자신의 법으로 처단하겠다면서, 살인범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살인이 계속될 것이라는 글을 남긴다.


문제의 홈페이지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자 경찰은 특별수사반을 구성한다. 봉형사(임원희)와 하형사(장항선)가 소속된 강력반과, 표형사(김민종)와 강형사(신은경)가 소속된 특수부 형사들로 구성된 특별수사반의 팀장은 노련한 형사인 김반장(주 현)이 맡는다.

사건은 계속 미궁을 헤매고 강력반 형사들과 특수부 형사들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특히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다혈질 봉형사와 냉철하고 엘리트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표형사는 수사 방식의 차이로 계속 대립한다. 겨우 두 형사가 팀워크를 맞추어 가며 조금씩 연쇄 살인범에게 접근해 가지만, 지능적인 범인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재를 파악하고 출동할 때마다 범인은 유유히 범행 현장을 빠져나가는데….

김영진 ★★★☆☆
갈지자로 걷지만 재미가 '쏠쏠'


<이것이 법이다>는 형사 미스터리 영화지만 취하고 있는 입지가 다소 어정쩡하다. 코미디와 액션과 멜로가 미스터리의 플롯에 얽혀 있다. 그런데 잘 정돈된 것이 아니라 갈지자로 오락가락한다.


<토요일 오후 2시>에 이어 두 번째 영화를 만든 민병진 감독은 영화에서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의 흔적을 드러낸다. 세련된 미스터리 범죄물의 틀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시늉일 뿐 관객의 시선을 잡아챌 수 있는 장르적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것이 법이다>는 비빔밥 같은 영화이다. 하지만 감독은 뚝심을 갖고 하고 싶은 얘기를 밀고 나간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익숙한 매력, 바로 인간의 정취가 스며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김민종과 신은경이 주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보다는 특이하게 생긴 외모로 <다찌마와 Lee>에서 이름을 알린 임원희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가 연기하는 봉형사는 합리적인 수사 능력과는 거리가 멀고 무조건 돌진해야 직성이 풀리는 터프가이지만 속마음은 착해빠진 인물이다. 이 어리숙한 형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엽기적인 살인범을 쫓는 플롯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동안 영화는 코미디와 멜로 드라마와 액션 장르를 횡단한다. 미스터리 플롯은 느닷없는 반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이야기를 지탱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미스터리 수사물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법이다>는 못 만든 영화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재미있다. 그 재미는 이야기의 곁가지에 있는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사소해 보였던 그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 영화가 핵심으로 노렸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외형으로는 건달 같고 속마음은 보통 사람의 순해빠진 감정을 갖고 있는 강력반 형사들의 일화를 통해 다분히 한국적인 형사 영화의 내밀한 매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감추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 속내는 전면에 두드러진다.



<이것이 법이다>는 온갖 첨단 테크놀로지를 동원해 가며 수사하는 현대적인 수사 영화의 꼴을 갖추기에는 무기력하다. 그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수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윽박지르는 소리에 잔정을 감춘 인간적인 형사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한다. 영화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다른 영화에서라면 쉬어 가는 단락이다. 임원희가 연기하는 봉형사와 장항선이 연기하는 하형사가 술자이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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