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일본 알아야 '교과서 전쟁' 이기지…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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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과학적 '제국주의 연구' 빈약…
맹목적 반일·증오심 키우는 교육도 문제


"나는 반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설가 현기영씨가 데카르트의 명언을 빌려, 한국인의 맹목적 반일 감정을 풍자한 말이다.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인 나카무라 후쿠지(中村福治) 씨의 최근 저서 〈김석범 화산도 읽기〉(삼인)에 '발문'을 쓰면서 지나친 반일 감정의 문제점을 이처럼 지적한 것이다.




현씨의 지적은 비록 약 2개월 전에 쓰인 것이지만, 일본의 우익 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교과서모임)이 만든 역사 교과서의 검인정 통과 사건을 둘러싸고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문제가 터지기 전부터 시작해 한 달 가까이 교과서 문제를 연일 대서 특필하며 국민과 정부를 향해 '맹목적 반일'을 독려했다. 대다수 언론에 의해 이른바 '국민 정서'로 옹호되는 맹목적 반일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역사 교과서' 문제의 진행 추이를 주의 깊게 관찰해 온 관련 학자들은 최근 상황을 매우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상당수 지식인은 1980년대 초반 제1차 '교과서 파동'의 교훈을 떠올리며 '이제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내부로 돌려야 할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제1차 교과서 파동이란, 1982년 당시 일본 문부성(현 문부과학성)이 역사 교과서를 검정하는 과정에서 근대 시기 일본이 이웃 나라에 저지른 '침략'을 '진출'로 표기할 것 등을 강요해 한국을 비롯한 관계 국가로부터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당시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수정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태는 진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역사 교과서 파동의 일단락은 한국에게나 일본에게나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었다. 먼저 일본의 경우. 이 파동을 계기로 크게 두 줄기에서 대대적인 반성이 있었다. 하나는 일본의 양심적·진보적 지식인의 반성으로, 이들은 역사 기술에 군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노력은 오늘날 일본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반면 우익 인사들의 반성도 있었다. 교과서 파동 때 패배를 경험한 우익 집단은 이른바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 서술을 위한 결집을 서두르게 되었고(예컨대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이들의 집요한 노력이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새 역사 교과서를 통해 열매를 맺었다.


한국에서는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 서술을 위한 한·일 연구자 간의 교류가 본격 시작되었고, 한편으로는 '일본을 바르게 알자'는 이른바 일본학 연구 붐이 일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일 역사학자·역사 교육자 간의 교류는, 참가자들이 연구 및 토론 결과를 공동으로 엮어 양국에서 동시 출간할 정도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114쪽 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일본 연구 분야는 사정이 달랐다. 1980년대 교과서 파동 이후 국내에서는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는 식의 일본 논쟁이 언론계와 일반 시민 사이에 붐을 이룬 적은 있지만, 정작 일본을 객관적·과학적으로 이해한 학문적 성과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해 왔다. 일본사를 전공한 소장 연구자 임성모 박사는 현재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과서 파동 이후 20년 가까이 흐른 오늘 '우리는 과연 일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낄 뿐이다."


일본 우익에 대한 '주목할 만한 저서' 극히 적어




일본 연구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일본의 우익 논리에 대한 사적(史的)·사상적 이해이다. 하지만 일본 우익 논리의 근저를 이루는 일본 근대 사상사에 대한 연구는 최근까지 진행된 국내의 일본학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1980년대 이래 최근까지 일본 우익의 역사에 관해 국내 학자가 쓴 주목할 만한 저서는 한상일 교수(국민대)가 쓴 〈일본의 국가주의〉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같은 사정은 번역 분야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개화기 김옥균·유길준 등 개화파는 물론,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 등 식민지 시대 한국 최고의 지식인들에게도 엄청난 사상적 영향력을 행사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4∼1937)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탈아론'을 주장해 일본은 물론 근세 조선의 운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저서인 〈학문을 권함〉이 중복 번역된 것을 빼고 그의 저작 대부분은 여전히 일본어 상태로 남아 있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일방적 분노는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일으켜 패망할 때까지 일본 내부에 군국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양심적 지식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하게 만들었다. 우치무라 간쇼(內村鑑三) 요시노 사구죠(吉野作造) 미키 기요시(三木淸) 미노베 다즈키치(美濃部達吉) 등이 바로 그들이다. 우치무라 간쇼는 러·일 전쟁 때 '비전론'을 주장한 평화주의자이며, 미키 기요시는 '대동아 공영'을 비판하다가 투옥되어 영양 실조로 옥사했다. 헌법학자인 미노베 다즈키치도 파시즘 광풍에 맞섰던 근대 일본의 양심. 이들은 일본의 현행 중등 교과서에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지만, 한국 중등 교과서에 이들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한국의 중등 교과서는 이같은 불균형 속에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만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셈이다.


근대 일본 또는 근대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하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죽은 침략의 원흉' 정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소장 정치학자 김석근 교수(연세대)는 "이토 히로부미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함께 우리 처지에서는 침략의 원흉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의 근대를 만들어 간 선각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 사실을 외면하는 순간부터 근대 이후 일본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실종될 위험을 피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한국인의 피해 의식, 친일파 연구 부진 초래




한국인의 피해 의식과 맹목적인 반일 감정은 일본의 우익 논리 못지 않게 식민지 시대 및 현대사 이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친일파 연구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게 하는 상황을 낳았다. 특히 행적이 아닌 논리·사상 측면에서의 친일파 연구는 자칫 일본 우익의 논리를 정당화해 줄 위험이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 근대사의 치부로 여겨져 왔다.


친일파 연구의 공백은 한국 근대 지성사를 파악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근대 지성의 상당수가 포진해 있는 친일파에 대한 연구가 부진함으로써, 한국 근대 지성사의 전체 지도 또한 제대로 그려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제 때 친일파의 거두로 활약했던 윤치호의 영어 일기 일부를 번역해 〈윤치호 일기〉로 펴낸 김상태씨(서울대 박사 과정)는 "친일파 연구는, 한·일 관계사와 식민지 상황의 내면 논리를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진전되어야 할 연구 분야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을 불문하고 오도된 역사 인식은 잘못된 역사 교육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잘못된 역사적 실천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자기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자기 반성 요구에 부응하느냐 못하느냐, 바로 이것이 필경 장기적으로 지속될 '한·일 교과서 전쟁'의 관건이다.교사는 지성인이다’라는 발언은 ‘사자는 육식 동물이다’라는 설명문처럼 싱거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교사는 지성인이어야 한다는 시각은 매우 도전적이다. 오늘날 교사는 지성인이 아니라는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국가 권력의 통제와 학부모의 간섭, 그리고 산업 사회의 요구가 극심한 사회에서 교사는 지성인이 아니라 ‘기능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 학교·교사·학생·학부모는 모두 ‘공교육 위기’의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학교는 교사 성과급·자립형 사립 학교·수준별 수업 등 효율성을 기준으로 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 전문 기관이자 스스로 기업체로 변신한 지 오래다.


헨리 지루의 <교사는 지성인이다> (이경숙 옮김·아침이슬)는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전통적 교육론을 전복하고자 한다. 학교는 더 이상 산업 자본에 복종하는 노동자를 양산하는 사회 재생산의 대리 기구가 아니며, 교사는 지배 장치의 태엽에 의해 돌아가는 스위스 시계가 아니고, 학생은 권력과 자본이 요구하는 ‘진리 체계’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루가 주창하는 새로운 교육학은 비판교육학이다. 지루의 교육학은 학교가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객관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본다. 지루가 보기에, 학교는 지식과 권력의 문제, 정치와 문화의 문제가 얽혀 있는 역동적 공간이다. 이같은 인식은 교사와 학생으로 하여금 ‘권력’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그리하여 학교는 사회와 동떨어진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안으로는 민주적 공공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밖으로는 대중 공동체와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좌파 이론의 영향을 받은 지루의 새로운 교육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서 출발하고 있다. 교육자들은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비판적인 지적 활동을 옹호하는 교육 프로젝트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교육자는 자신이 학생의 기본 권리를 억압하는 공범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자유 교육의 미명 아래 교육자들은 어떤 다양성을 억누르고 있는가?


지루의 비판교육학은 공교육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교육자들에게는 ‘복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질문을 해본 적이 없는 교육자들에게 이 책은 ‘불온 서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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