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평양전쟁 향한 '엇갈린 두 시선'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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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간장 선생〉,
'승리자의 자기 변명' '가해자의 자기 반성' 그려


〈진주만〉 감상법은 에로 영화에서 배울 일이다. 벗기기 위해 이야기를 짜는 에로 영화의 뻔한 술수를 탓하는 관객은 없다. 그처럼 〈진주만〉 앞에서 영화의 요건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 영화란 뮤직 비디오나 전투 게임과는 달라야 한다는 기대를 확실하게 무시했다는 점에서 〈진주만〉은 기념비적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특유의 애국주의에 바탕을 두고 일본이 진주만을 얼마나 처참하게 유린했는지 보여주는 데 골몰한다. 바다로부터,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포탄은 전쟁 자체의 참담함을 말하기보다는 일본의 잔혹성을 말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진주만 공격에 답하는 미국의 도쿄 기습 장면에서 감독은 '가미카제의 원조는 사실은 미국'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문제는 할리우드의 이런 막가파다운 셈법이 전혀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극장가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스펙터클의 가공할 힘이다.


애국주의뿐 아니라 이제는 희귀해 보이기까지 하는 멜로 코드도 눈여겨볼 만하다. 감독은 전작 〈아마겟돈〉에서도 비슷한 코드를 구사했다. 용사들은 특히 지구의 딸을 지키고 싶어했다. '딸을 지켜달라'며 사위 몫의 죽음을 장인(브루스 윌리스)이 감수했던 것이다.


〈진주만〉, 막가파식 애국주의+멜로 코드




〈진주만〉에서 생환을 보장할 수 없는 전투에 나가는 남자 주인공 레이프(벤 에플릭)는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레이프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든다. 절친한 친구와 애인은 서로를 위로하다가 사고로 아이를 만든다. 하지만 레이프가 생환하고 두 남자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함께 도쿄 공습에 나선다. 이번에는 친구가 목숨을 잃고 레이프와 여자는 아이를 낳아 한 가족을 이룬다. 그 가족은 성조기가 펄럭이는 친구의 무덤을 찾는다.


일본 영화 〈간장 선생〉을 〈진주만〉과 같은 자리에서 논하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는 데다가 〈진주만〉이 태평양전쟁의 발화점을 건드리는 데 비해, 〈간장선생〉은 그 끝인 히로시마 원폭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점 때문에 한 데 엮어 볼 만하다. 여러 모로 두 영화는 대척점에 서 있다. '승리자의 자기 변명'과 '가해자의 자기 응시'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우나기〉 등으로 두 차례나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일본의 거장. 1997년 작품 〈간장 선생〉은 집집마다 입영 통지서와 전사 통지서가 엇갈려 날아드는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의사 아카기는, 환자를 볼 때마다 간염이라고 진단해 돌팔이로 낙인 찍힌 처지다. 그는 그렇게라도 해서 사람들에게 영양 주사를 놓아주려고 한다. 간염을 연구하려고 현미경을 조작하던 그는 적군과 내통한 혐의로 체포되어 묵사발이 된다. 기아에 허덕이고 후방 보위에 내몰리는 주민들을 안쓰러워하는 의사 아카기의 시선은 곧 감독의 것이다.


쇼헤이 감독은 원폭의 참상을 그린 〈검은 비〉라는 작품으로 시비에 휘말린 전력이 있다. 가해의 사실을, 피해의 기억으로 바꿔치기했다는 혐의였다. 어쨌든 그의 생각은, 논의해볼 여지라도 있다. 전쟁의 무모함을 성찰하는 데는 남 탓하는 승리자의 시선보다 가해자의 자기 반성이 더 설득력이 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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