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끈끈한 남성 동맹' 뿌리를 찾아서
  • 고정갑희(여성문화이론연구소 소장) ()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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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퀴네 지음〈남성의 역사〉/

"남자다움도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하리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우리는 전진한다'라는 유행가, '내가 네 시다바리가'라는 〈친구〉의 유행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를 형이라고 부르는 이병헌. 박정희 군사 정권과 근대화 과정. 이것은 최근 번역된 〈남성의 역사〉(솔 펴냄)를 읽고 필자가 떠올린 것들이다.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은 태생적인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우정과 전우애는 같은 형제애라는 이름으로 묶이는가. 그리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군인들과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과정은 닮은꼴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 책은 나름의 탐색 과정을 보여준다. 독일을 중심으로 19세기 시민 계급이 떠오를 때부터 형성된 남성성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군국주의와 남성성이 군대·학교·스포츠를 통해 형성됨을 보여준다.


군대를 한번 보자. 이번 주 〈전원일기〉에서는 군입대 후 첫 휴가를 받아 나온 수남이가 논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에게 '충성' 하면서 거수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그곳의 아버지와 아저씨들도 거수로 답례한다. 모두들 튼튼해지고 남자다워졌다고 좋아한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보며 흐뭇해 한다. 아버지-아들-아저씨들의 거수는 바로 군대라는 '남성 동맹'의 문화적 체험 동일화에서 나온다. 군 가산점제를 당연시해 온 국가가 찍어낸 존재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학교이며, 소년을 남성으로 키우는 '남성성 학교'다.


스포츠 또한 한몫을 한다. 축구와 야구 등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스포츠는 남자들의 결속을 다질 뿐만 아니라, 국가의 사업이며 국가끼리의 '전쟁'이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도 바로 (남성)국민을 키우는 장이 스포츠였다. 월드컵을 생각해보면, '형제적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의 남성 동맹적 성격은 바로 드러난다.


19세기 스위스 대학에서도 술마시기 강요




대학에서의 술마시기 강요는 원래 남학생들의 끈끈한 형제애를 다지는 문화였다. 19세기 초 스위스 남자대학생조합은 남자들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장이자 '국민'을 키우는 장이었다. 이들이 결속력을 다지는 방식은 술과 결투다. 이 책에 실린 칼자국이 난 대학 서클 리더의 얼굴 사진은 우리네 텔레비전에서 깡패 조직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얼굴 흉터를 연상시킨다. '맥주 결투' '맥주 칼싸움' '맥주 조루'로 이루어진 이 '맥주국'은 전체주의적 위계 질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맥주를 폭탄주·회오리주·막걸리-소주로 바꾸어보면 남성 동맹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것임을 바로 알게 된다.


이와같이 〈남성의 역사〉는 '남성 동성적 동일성'의 논리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시도이다. 독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으나, 남자다움이라는 것도 여자다움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성의 역사 쓰기를 시작한 페미니즘이 낳은 하나의 결실인 이 책은, 기존 남성의 역사(His-story)가 여성의 역사(Her-story)에 의해 다시 쓰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남성성이 구조화했음을 밝히는 이 책의 노력이 남성 개개인의 책임을 구조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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