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스로 참회해 병든 뿌리 뽑는다
  • 전북 남원·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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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폭력 몰아내기 '21일 단식 기도' 10일째…
종단·스님 동참 적어


엄천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해탈교를 넘을 때 들고 있던 궁금증은 하나였다. 참회 단식 기도의 여파가 알고 싶었다. 가야산에서도 곧 참회 용맹정진에 돌입하기로 했고, 청동 대불 사업은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겠다고 발표한 마당이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지난 7월5일, 실상사가 '수행자들의 발로(發露) 참회와 거듭남을 위한 21일 단식 기도 정진'에 들어갈 때 내놓은 발원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참회가 안으로, 안으로 번져 온 승가에 수행과 정진의 열기가 넘치고, 우리 종단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


불교계 내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발로 참회와 21일 단식 기도'에 들어간 지 꼭 10일 째 되던 지난 7월15일 아침, 지리산 실상사를 찾았다. 경향 각지에서 스님과 불자 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오체투지하는 장엄한 풍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상사는 조용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불교계는 망신당하고 실상사만 좋아졌다고?"


오전 8시께 수경 스님(지리산살리기 국민행동 공동대표)을 먼저 만났다. 주지 도법 스님은 산책 중이었다(단식 중에도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수경 스님은 수염이 더부룩했고, 손에 500cc 짜리 네모난 생수통을 들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체중이 줄지 않았다며, 발로 참회의 의미부터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발로 참회는 불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발로란 자발적이라는 뜻이고, 참(懺)은 지금껏 잘못해온 모든 것을 뉘우치되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녹여내는 것이다. 회(悔)는, 그리하여 앞으로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수경 스님은 종단이나 원로회의, 여타 사찰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종단이나 선방이 폭력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다면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선방에서 찾고 있다. "밖에 나가서 하는 일(환경운동)에는 한계가 있다. 흐트러진 수행 풍토를 바로 세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라고 스님은 말했다.




잠시 후 도법 스님이 산책에서 돌아왔다. 단식 이후 체중이 7kg이나 줄어, 워낙 작은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하지만 눈빛이나 어조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도법 스님은, 일부 언론과 신자들이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님은 "해인사와 불교계 전체는 망신을 당하고 실상사 이미지만 좋아졌다는 인식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정말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단 내의 오랜 병폐인 폭력의 뿌리는 그대로 있는데, 그것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폭력이 행사될 수 있는 것이 불교계의 구조적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청동 대불 사업과 같은 퇴행적인 행태가 재발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참회 단식 기도의 성과는 전무한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수경 스님은 청정 수행의 모범을 보일 각오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용맹정진을 실천한다면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스님은 말했다. 문명이 주는 일체의 편의를 끊고, 자급자족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투철함 속으로 '귀향'할 계획이다.


도법 스님은 실상사 내부의 결속이 이번 단식 기도의 큰 성과라고 말한다. 스님은 "입산한 지 35년 되었는데, 요즘 실상사처럼 분위기가 좋은 공동체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성과로는 재가·신행 단체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스님은 종단 내 폭력 근절을 위해 재가 단체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0일 동안, 종단 관계자나 스님들은 다녀가지 않았지만, 재가 단체·지자체 지도자·타 종교인·환경운동가·신자 들의 동참이나 격려는 끊이지 않고 있다.


실상사 스님들의 단식은 21일 만인 7월25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려면 3개월 정도 극도의 절제와 요양이 필요하다. 스님들은 단식보다 긴 회복기가 훨씬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실상사를 뒤로 하고 해탈교를 건널 때 다른 질문이 들려 있었다.


실상사 스님들이 다시 태어나는 그 조심스런 회복기가 한국 불교의 회복기일 수는, 과연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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