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실] 시민단체, 신중하게 '운동'하라?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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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는 위법"…
'문화 소비자 운동'에 제동 걸려


"왜날 취재하나? 그런 판단을 내린 대법원 판사에게 물어야지."


1996년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운동을 벌였다가 고발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권장희 총무는 예상 밖의 판결에 곤혹스러운 기색이었다. 지난 7월13일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 주었던 원심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 보내면서 '목적에 공익성이 있다고 해서 위법한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고법의 심리는 불매운동의 수위를 따져 위법성 여부를 가리는 데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권씨 등 관련자 3인이 공연 기획사인 (주)태원예능으로부터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때는 4년 전. 당시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소식을 듣자 기윤실을 비롯한 시민단체 50곳은 곧바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려 반대 운동에 돌입했다. 그 공연이 △외화를 낭비하고 △청소년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며 △성추행 혐의자를 우상화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권씨는 반대 운동이 주최측도 놀랄 정도로 사회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효과도 강력했다. 협력 회사에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통보해 많은 회사로부터 협력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던 것이다.


기획사인 태원예능은 죽을 맛이었다. 협찬사와 입장권 판매 대행사는 물론 심지어 경비업체까지 난색을 표해 '손발이 잘린 상황에서' 공연을 치렀다. 그 뒤 자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태원예능은 "서울은행과 한일은행이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을 파기하는 과정에서 공대위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원은 1, 2심에서 시민단체인 공대위의 손을 들어 주었다. '불매 운동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은행의 의사 결정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뒤집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법원은 공연에 대해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에 저촉되거나 반사회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런 마당에 불매 운동으로 인해 은행이 부득이하게 입장권 판매를 취소했다면 그 원인 행위가 위법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시민단체가 운동 수단을 택할 때 더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운동을 주도했던 권씨도 느낀 바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의 갈등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마녀 사냥 징후를 느꼈다는 것이다.


"공연 한 달 전이었다. 우리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었고 기획사의 고통이 너무 심하니 무조건 공연을 막을 것이 아니라 공동 감시로 입장을 바꾸기로 했다. 그러자 여러 단체가 '돈을 받았느냐. 이럴 거면 왜 시작했느냐'며 몰아붙였다. 이런 것이 매카시즘이구나 싶어 아득했다." 그 전에도 기업을 대상으로 불매 운동을 여러 차례 했던 권씨는 "힘이 있는 만큼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그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그는 "우리 활동이 자본의 상업성에 맞서 소비자 주권을 지키려는 문화 소비자 운동이라는 점을 헤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라운드에서는 한국 축구가 파죽지세로 질주하고 있지만 스크린에서는 한국 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주말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예스터데이>는 할리우드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 턱없이 밀려 3위를 기록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지난주 박스오피스에서 수위를 달렸던 <해적, 디스코왕 되다>도 2위로 내려앉았다.


칸 영화제 후광을 업고 다시 선두권에 진입한 <취화선>은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억원짜리 저예산 영화로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수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묻지마 패밀리>는 5위를 기록했다.
8백25명이 누드로 등장한다고 해서 화제를 일으켰던 <마고>의 흥행 성적은 개봉 11주째인 <집으로…>에도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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