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고추장 종지에 조상 모실 수야"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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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도예가 3인, 납골함 전시회 〈生과 死, 그리고 시작展〉열어


장묘 문화 개선 운동이 한창인데 젊은 도공들이 납골함 도예전을 열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희대 도예과 선후배 사이인 권재근(32) 박중규(32) 이유영(28) 씨가 인사동 인사화랑에서 〈生과 死 그리고 시작展〉 (8월15∼22일)을 열고 예술로 승화한 납골함을 선보였다.




이 전시회는 처음에 '고추장 종지에 조상을 모실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생각에서 발상했다. 사실 납골당의 음침한 분위기와 조악하게 만들어진 납골함은 화장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킨다. 조상을 '모신다'기보다는 '처분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납골함은 화장 과정에서 유일하게 정성을 담을 수 있는 도구이다. 납골함을 추모함으로 바꾸어 부르는 이들은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상감 청자까지 우리 조상들이 시도해온 모든 도예 기술을 동원해 작품 하나하나를 빚었다.


지금까지 납골함의 재료는 돌과 나무였다. 하지만 돌과 나무는 물과 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소재. 불이 나면 깨지거나 타버리고 습해지면 결로 현상(이슬맺힘)이 생기거나 썩고 만다. 그런 경우 안에 담긴 유골이 손상되므로 조상을 두 번 죽이는 불효를 범하는 셈이다.




이에 반해 물·불·흙·공기라는 자연계의 4대 원소가 어우러진 도자기는 납골함의 완벽한 재료이다. 인간사의 생로병사처럼 빚고 새기고 말리고 굽는 과정을 모두 거친 도자기는 불과 물의 침범으로부터 유골을 지켜낸다.


기교는 죽이고 전통 문양은 살리고…


이번 전시회에 진열된 추모함은 투박한 것이 많다. 쓸데없이 기교를 부리지 않았을 뿐더러 화려한 곡선도 절제했다. 펑퍼짐한 모양을 한 추모함은 커다란 아가리로 유골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새겨진 사능·당촉·파상형 같은 전통 문양은 유골을 푸근하게 감싼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세 사람은 모두 한국현대미술대전과 동아공예대전에 입선한 경력이 있는 신예 도공이다. 이들은 도자기 추모함이 곤궁한 도공들의 살길을 열어 주기를 바란다. 도자기 엑스포로 한껏 들떠 있지만 아직까지 여주·이촌·광주의 도공들은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권재근씨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입 납골함 가격은 1백50만∼3백만 원이다. 하지만 도자기 추모함은 30만원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다. 그 정도 값이면 도공들이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신명 나게 추모함을 빚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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