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때맞춰 쏟아져 나온 '미국 바로 보기' 책들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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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나라인가〉등 역사·전략 분석서 '봇물'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관련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테러 사건을 전후로 미국의 어제와 오늘, 미국의 겉과 속을 조명하는 책들이 잇달아 서점에 진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최근에 나온 미국사 관련 책 두 권은 이를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역사학자 김봉중 교수(전남대)가 쓴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조합공동체 소나무)와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W. 로웬이 펴낸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평민사)이 그것이다.


〈미국은…〉은 프런티어·민주주의·지역 정서·다문화주의라는 네 가지 코드로 미국 역사를 이해하고자 시도한, 독창성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미국을 모델로 삼아 그대로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 경험을 하나의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 쓰인 〈미국은…〉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은 오늘날 풍요함이 넘쳐 보이는 미국 역시 한때(1930년대 대공황이 대표적) '밥그릇 안에 음식 대신 먼지가 수북한 시절'이 있었으며, 지역 감정이 내전(남북전쟁)까지 부른 쓰라린 역사를 가진 보통 국가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가 사실은 남루한 인디언·이민 노동자들이었다는 점과, '미국을 가장 미국답게 한' 미국 서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재개발된 곳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맛도 새롭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은 미국의 역사 교과서가 미국사의 어두운 구석을 왜곡·미화하기에 급급했음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이 책은 이같은 고발을, 헬렌 켈러와 우드로 윌슨의 예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 대통령을 지냈으며 민족자결주의자로 알려진 우드로 윌슨은 한국인에게도 '독립 운동에 불을 지핀 위대한 미국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하지만 지은이에 따르자면, 그는 미국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열렬한 식민주의자였으며, 완고한 반공주의자였다.




쏟아져 나오는 미국 관련 책들









































책 이름 지은이(옮긴이) 출판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제임스 W 로웬(이현주) 평민사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 김봉중 소나무
한반도의 선택 이삼성·정욱식 외 삼인
미국 패권이 이해 정항석 평민사
세계 없는 세계화 피터 고완(홍수원) 시유시
갈등의 핵, 유태인 김종빈 효형출판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소에지마 다카히코 들녘


반면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평등·박애 등 인류의 보편 가치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던 핼렌 켈러는 윌슨과는 정반대로 미국 역사에서 단순히 인간 승리의 한 빛나는 사례로만 '기억'될 뿐이다. 계급 차별 투쟁·여성 해방 운동 등 그녀를 진정 '미국의 영웅'으로 만든 활약상은 교과서 서술에서 고스란히 빠졌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처럼 왜소화한 헬렌 켈러를 '불구가 된 영웅'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외에도 역사 왜곡과 미화의 무수한 사례를 들고 난 뒤, 지은이는 "미국의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터무니없는 진보 이데올로기와 맹목적인 낙관만 가르쳐 결과적으로 미국의 역사 교육을 그르쳤다"라고 질타했다.


현실로 눈을 돌려 보면 미국의 세계 전략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 패권주의의 성격을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해 출판계는 최근 두 권의 안내서를 준비해 놓았다. '부시의 MD 구상, 무엇을 노리나'라는 부제가 달린 〈한반도의 선택〉(삼인)과, 〈미국 패권의 이해〉(평민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삼성 교수(가톨릭대)·윌리엄 하퉁(미국 무기거래연구소 소장) 등 국내외 전문가 7명이 공저한 〈한반도…〉는 현재 '반테러 전쟁'과 함께 국제적으로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역설해 눈길을 끈다. 이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 강대국 간의 게임으로만 여겨져온 미사일 방어는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의 문제이다. 그 첫 시험대가 한반도일 뿐 아니라, 전략적 귀착점도 동북아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지은이들은, 한반도가 미사일방어 실현의 첫 시험장이 된 이유를, 미국이 이 지역을 패권 유지를 위한 사활적인 승부처로 판단한 데 따른 필연적 귀결이라고 주장한다.


'인구 2%' 유태인이 미국을 어떻게 조종하는가


정항석 박사(전북대 객원연구원)가 지은 〈미국 패권의 이해〉 역시 '미사일방어 논리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미사일방어는 이른바 '깡패 국가'의 미사일 및 핵 위협으로부터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본질적으로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21세기형 전략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을 움직이는 실체가 누구인지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들녘이 최근 펴낸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를 펼쳐볼 일이다. 일본 도코하가쿠엔 대학 소에지마 다카히코 교수가 쓴 이 책은, 현재 미국을 주름 잡는(또는 주름 잡아 온) 인사들의 인명록인 동시에 계통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정·재계,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 및 연예계를 움직이는 인사 4백여 명의 출신 배경과 이데올로기적 성향·활동상이, 헤리티지 재단 등 미국의 주요 연구기관 정보와 함께 망라되어 있다.


〈누가 미국을…〉과 대조해 가며 읽을 만한 책이 바로 유태인 문제를 다룬 〈갈등의 핵, 유태인〉(효형출판)과, 〈세계 없는 세계화〉(시유시)이다. 〈갈등의 핵…〉은 원래 재미 언론인인 김종빈씨가 오랜 세월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유태인의 모든 것을 정리한 노작이지만, 미국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미국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유태인이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을 어떻게 배후에서 조종하는가를, 주요 인물의 면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제1장 '작은 거인들' 편이다. 〈세계 없는 세계화〉는 이른바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라는 개념을 통해 약 50년간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든 미국 경제 패권의 역사를 조망했다.


최근의 미국 관련 책이 과거와 대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온갖 잡동사니를 긁어 모은 듯한 과거의 인상기와 경험담에서 탈피해 본격적으로 미국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최근의 책들은 한결같이 미국을 '우리 눈으로, 우리 처지에서'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부 책은 평자들 사이에서 '서술이 산만하다'거나 '현실감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 책은 대부분 뚜렷한 문제 의식을 나름의 대중적인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미국 이해'로 가기 위한 훌륭한 디딤돌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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