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진다
  • 글/사진 강운구 ()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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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야 어떻건 해는 정해진 길로 정해진 시간표대로만
간다.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건 해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 농사는
더 그렇다. 지역에 따라 정해진 시기에 씨 뿌리고 정해진 시기에 거둔다.
그런데 해를 추월하거나 아니면 거스르는 농사도 이제는 많이 짓는다.
이른바 ‘하우스’ 농사가 그렇다. 제때보다 이르거나 늦게 수확하려고
그러기도 하고, 아예 없던 열대 것을 만들어 먹으려고 그러기도 한다.
처음에는 초본 식물만 그렇게 하더니 요즘은 목본 식물도 그렇게 하여
과일을 빨리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정해진 해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므로 마침내는 해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벼농사도 일부에서는 그런다. 그런데 쌀이
남게 되었으므로 단군 이래로 목 매달고 있던 그 농사의 증산을 포기하는
정책을 편다고 한다. 끔찍한 그 말은 곧 모든 농부들을 포기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사실은 식량이 남는 것이 아니라 쌀이 남는 것일 뿐이다.
밀과 밀가루 그리고 콩 팥 같은 잡곡과 그 밖의 여러 곡물은 수입을
한다. 그러므로 포기한다는 선언보다는 다른 작물로 바꾸는 정책을 펴는
것이 순서일 터이다. 포기하고 만다면 이 작은 반도의 그 너른 들은
다 무엇에 쓰나? 너무나 밋밋해서 골프를 치기에는, 환장하는 누구라도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여러 곡물뿐만 아니라 사료로 쓰려고 볏짚까지 수입한다.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당연히 볏짚 같은 것은 수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콤바인이라는 기계로 벼를 수확하면서는 이삭의 벼만 거두고 나머지는
잘게 썰어서 논에 깔아 버린다. 그리고 나서 볏짚을 수입한다. 손 딸리는
농부들의 인건비보다는 사들이는 볏짚이 싸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콤바인이 발전하여서 짚들을 네모나게 압축하여 단을 만들기도 하고
원형으로 둘둘 말아 세워 놓기도 한다. 둘둘 말린 둥근 볏짚더미가 여러
개 서 있는 들판 풍경은 사진에서 보던 외국 것과 같다. 낯선 것일지라도
그 풍경이 서양 같은 수준으로 생활도 바꿀 수 있다면, 하다 못 해 볏짚이라도
수입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이제 낟가리는,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다랑이 논에서나 어쩌다 볼
수 있을 뿐이다. 풍경이 달라지면 마침내 사람도 달라진다.


강원도 정선께의 밭에 정갈하게 세워둔 메밀가리 위로 올해의 늦가을
햇살이 정확하게 지나가고 있다.






















메밀가리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다. 대개는 베어서
그냥 쌓아 둔다. 성질 깔끔한 농부나 이처럼
공을 들여서 정취 있는 농촌 풍경을 만든다.
그런 풍경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정서적인 자양분이 되어 왔다.
풍경이 달라지면 마침내 사람도 달라진다.







©강운구








* 강운구의 풍경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관객들이 눈물에 목말라 있었나 보다. 예상을 뒤엎고 <아이 앰 샘>의 독주가 2주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56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중독>을 제치고 <아이 앰 샘>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가문의 영광>은 힘이 조금 빠지기는 했지만 4백만 고지를 넘어 5백만 고지를 향하고 있다. <몬스터 볼>이 부진한 것은 영화제 수상작의 흥행 징크스를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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