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시민적 지식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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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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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택 지음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정수복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21세기는 지식 정보 사회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선포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지식인의 후퇴를 넘어서 지식인의 종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식을 상품화하여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신(新) 지식인은 낱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인이 아니라 반(反)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결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전체의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부정 부패와 성공제일주의의 세상에서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지식인의 모습이란 권력의 하수인인 ‘홍위병’이거나 곡학아세를 일삼는 일그러진 자화상일 뿐이다. 그러나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옛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상황일수록 공공선을 지향하고 공론을 활성화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더욱 간절하게 요청되고 있다.



서유럽과 한국의 지식인론을 치밀하게 재구성



바로 이러한 시기에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식인상을 모색하는 한 권의 소중한 저서가 출판되었다. 강수택의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삼인 펴냄)가 그것이다. 이 책은 칼 만하임에서 시작하여 지그문트 바우만에 이르는 서유럽 사회의 지식인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다음, 1950년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현대 한국 사회의 지식인론을 구체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치밀한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강수택은 장준하·송건호·김병익·한완상·김동춘·조혜정·김성기·강준만 등이 펼친 지식인론을 그 논의가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식인을 일정한 이념적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배열하는 단순 작업을 넘어서 우리 사회 내부의 자생적 지식인 담론의 생산 현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학계를 넘어서 한국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서양의 지식인론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부분이나 현대 한국 사회의 지식인론을 시대 별로 재구성한 작업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미래지향적 지식인 상을 모색한 데 있다. 강수택은 이론적 논의와 경험적 분석을 통과하여 ‘시민적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지식인 상에 도달한다.



그가 말하는 시민적 지식인이란 ‘생활 세계를 지키고 자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지성으로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시민적 지식인은 결코 기존 교수·언론인·작가·평론가 등의 직업 범주나 박사 학위 소지자라는 교육 수준을 기준으로 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불의에 분노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어떤 시민이라도 단지 분노를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성과 성찰성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공적인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에 나서는 주체가 될 때 시민은 곧바로 ‘시민적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 시절 지식인은 방향을 제시하는 특권을 독점하고 시민들이 그 방향에 따라 행동하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지식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주체가 아니라 객체화한 시민들이 아무리 많이 참여해도 우리가 바라는 민주적 시민 사회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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