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포르노 “누가누가 음란한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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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금기 깨는 영화제 열려…‘외설적인 권력’ 비판
서울 한복판에서 해괴망측한 행사가 펼쳐졌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 그리고 <딴지일보>가 공동 주최해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음란 영화제’가 그것이었다(2월28일∼3월3일).




음란 영화제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번 행사에서 상영된 단편 영화 13편과 초청작 2편 중에는 일반 극장에서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담은 것이 상당수였다. 변기 위에 앉아 있는 남자 포르노 배우의 성기가 덜렁거린다거나(<스윙 다이어리>), 여배우의 얼굴 위로 느닷없이 정액이 날아드는() 장면 따위는 기존 에로 비디오에서도 접하기 힘든 것이었다.


근친상간·동성애·수간 같은 사회적 금기도 이들 영화에서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친형과 동성애 관계이면서 형수와도 불륜을 맺고 있는 남자(<멀미>), 아들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포르노와 일체가 되어 버린 어머니(<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를 통해 이들 영화는 가족주의를, 이성애를, 모성을, 신성을 무시로 실험하고 모독했다.


이들이 갑자기 음란을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음란이 만개한 시대라고는 하나, 음란을 공개적으로 옹호 또는 표방하고 나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감독들은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평소에 얼마나 놀았기에’라는 주변의 의혹에 찬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스윙 다이어리>의 이 난 감독은 “음란 영화제에서 내 작품이 상영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두려움이 앞섰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작품은 기실 ‘고전적인’ 의미의 음란물, 곧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형태의 음란물은 결코 아니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발언 기회를 얻은 한 20대 관객은 “음란 영화제라고 해서 왔더니 음란한 영화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실망했다”라고 말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권력 기관의 기준에 따른다면, 이들 영화는 분명히 음란한 영화라는 것이 영화제 프로그래머 원승환씨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독립영화협회 조영각 사무국장은 요즘 음란물에 대한 규제가 더욱 교묘해지는 양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영화진흥법상 등급 보류 조항, 미성년자보호법상 불량 만화 조항 등이 잇달아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음란 영화제가 기획된 것도 이같은 현실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음란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 ‘음탕하고 난잡함’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엇을 음란으로 볼 것이냐 하는 기준은 판단 주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검열을 수행하는 권력 기관은 성행위나 성기 노출 정도에 따라 음란 여부를 판단한다. 지난해 자신의 누드를 인터넷에 올린 미술 교사 김인규씨를 검찰이 기소한 것은 이처럼 권력이 정한 기준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검열을 반대하는 진보 단체들은 ‘그렇다면 팬티를 입지 않은 곰돌이 푸도 음란물이냐’고 비아냥댄다. 성기 노출·자위 행위 따위가 나타나는 맥락과 의미를 무시한 채 이를 무조건 음란하다고 몰아붙이는 권력이야말로 음란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문화 평론가 이택광씨 또한 최근 발표한 단행본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이후)에서 이같은 ‘권력의 외설스러움’을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그에 따르면, 도덕이나 윤리를 내세워 비판자들을 공격하는 지배 계급이야말로 음란함의 표본이다. 이들 ‘음란한 권력’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비판자들의 도덕성에 딴죽을 걸곤 한다.


‘음란의 적’ 5인방을 실명으로 지목


문제는 지배 권력 대 피지배 권력의 단순 구도로 나누어 ‘진짜 음란한 게 누구냐’고 따져 묻기에는 우리 사회의 전선이 너무 다양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파업전야>의 상영을 금지한 공권력에 맞서 일치단결한 모습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던 진보 진영은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해 왔다.





이번 영화제 기간에 열린 토론회에서 강내희 교수(중앙대·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대행 겸 정책기획위원장)는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해 가며 ‘음란의 적’ 5인방을 지목했다. ①강지원 검사(전 청소년보호위원장)나 김성이 교수(전 청소년보호위원장)처럼 국가 권력에 소속된 관료들 ②손봉호 서울대 교수나 권장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 류의 보수적 도덕주의자 ③영화 <거짓말>을 음란물이라고 공격한 작가 이호철씨를 비롯해 과거에 넓은 의미의 진보적 예술인으로 통하던 예술인 ④양혜경·최혜영 씨 같은 여성단체 인사 ⑤참교육학부모회 같은 학부모 단체가 그들이다.


이 중 정부 관료와 종교 단체 보수주의자를 뺀 나머지는 과거 진보 진영 내에서 동지적 관계를 맺었던 부류들이다. 이들이 오늘날 도덕적 보수주의를 앞세운 신보수주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 강교수의 지적이다. 음란물을 저질로 보는 것은 대중을 저질로 만들어 거세하려는 신자유주의 세력에 협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의 진보는 음란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 참석한 이동연씨(문화연대 사무처장)는 이같은 관점 때문에 상업성 문제가 도외시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신자유주의의 유력한 파트너는 문화적 보수주의뿐 아니라 일국의 경계를 넘어선 섹스 산업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순진한’ 싸움은 결과적으로 ‘죽 쒀서 개 주는’, 곧 섹스 자본가들만 살찌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권은선씨(영화 평론가)는 나아가 ‘음란은 무조건 숭고하다’고 옹호하는 식의 태도가 여성을 배제한, 남성 중심의 반쪽짜리 아젠다일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음란물의 표현 방식이 노골적이거나 변태적인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 성(性)을 재현하는 방식이 여성 혐오적이고, 여성 착취적이며, 관음주의에 입각해 여성을 대상화하는 식이라면 이는 마땅히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번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창작자의 음란함이 현실의 음란함을 앞지르지는 못한다고. 그러니 영화제가 내건 구호대로, “누가 음란을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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