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희망의 해방구로”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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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한마당 문화교육 워크숍 현장을 가다



"학교가 좋아요.” 지난해 7월 학교가 싫어 자퇴한 이예린양(15)은 요즘 학교를 두 곳이나 다니고 있다. 이양이 다니는 학교는 둘 다 대안 학교로, 낮에는 난나 공연예술학교에 가고 밤에는 은평씨앗학교에 나간다. 그녀가 학교를 두 곳이나 다니는 이유는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서’이다. 그녀는 요즘 뭔가를 배우는 것에서 느끼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얼마 전 그녀는 가출한 ‘짱 언니’를 설득해 학교에 데려가기도 했다.


왕따·체벌·교실 붕괴로 얼룩진 학교를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행사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센터장 조한혜정)는 '학교가 좋아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안교육한마당(2002 Seoul Activelearning Expo 5. 20∼5. 31)을 열었다.


대안 교육 엑스포로 꾸며지는 이번 행사에서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자며 대안교육센터가 내놓은 카드는 바로 문화 교육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말미암아 재미와 감동을 모두 거세당한 문화 교육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대안교육센터 김찬호 부센터장은 “문화를 향유할 능력을 키워서 삶에 대한 아이들의 자세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학습 의욕도 높이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이다”라고 설명했다.


대안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시각은 아직까지 학교라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튕겨져 나온 학생들의 임시 수용시설이라는 데서 못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안 학교를 그들만의 해방구로 일구었다. 문화 교육 분야에서는 이제 정규 학교에 비교 우위를 가질 만큼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대안교육한마당 기간에 진행된 문화 교육 워크숍 현장에서도 문화 교육의 효과가 확인되었다. 단순한 워크숍 행사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반전시킬 계기를 마련했다. 호주의 생태주의 퍼포먼스팀 허법(Hubbub)과 함께한 워크숍의 열기는 여느 인기 가수의 리허설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거웠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몇 시간씩 연주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행사 주최측은 퍼포먼스에 이들의 순서를 급히 끼워 넣었다.





학생들 자발적 참여 끌어내 큰 효과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가 주관한 ‘몸타 프로젝트’ 워크숍에 참가한 하자센터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다같이 모이는 데만 4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자기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빠른 속도로 워크숍에 몰입했다. 넘치는 표현 욕구를 주체하지 못한 이들도 퍼포먼스 공연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설치 미술 워크숍에 참가한 은평씨앗학교 학생들의 열정은 더 뜨거웠다. 이들은 퍼포먼스 무대를 꾸밀 환경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3∼4일 동안 밤을 꼬박 새웠다. 버려진 깡통을 주워다 나비 모양으로 잘라 색칠하는 단순 작업을 통해 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윤여준군(19)은 재능을 살려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었고, 지만길군(18)도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5월24일 열린 문화 교육 토크쇼에서는 지난해 '누드 파문'을 일으켰던 충남 안면초등학교 김인규 교사가 나와 문화 교육의 효험을 증언했다. 전교조 소속이던 그가 5년 간의 해직 교사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가 직면한 것은 교실 붕괴였다. 학생들은 절대로 체벌을 하지 않는 그의 수업 시간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절망한 그는 학생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학생들의 욕망을 취재한 그는, 가방 장식물로 주렁주렁 매단 ‘모빌’과, 필통에 연예인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꼴라주’, 책상을 칼로 파서 만든 '조소'를 발견했다.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독특한 미감을 키워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그가 이후 아이들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자 아이들은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을 내놓아 그의 새로운 시도에 화답했다.


5월25일, 하자센터 야외 무대에서 열린 퍼포먼스에서 학생들은 그동안 워크숍에서 준비했던 공연을 선보였다. 마치 자신들을 낙오자로 취급하는 사회에 시위라도 하듯 이들은 쓰레기로 꾸민 무대에서 재활용품 악기로 더없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땀과 열정이 밴 이들의 화음에서 우리 교육의 새로운 희망이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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