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4년만 기다려라”
  •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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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가 말하는 월드컵/“승리 경험한 자신감이 변화 이끌 것”
월드컵이 남긴 것은 강력한 문화 충격이었다. 골 세리머니로 ‘오노 액션’을 선보인 젊은 선수들, ‘프라이드 오브 아시아’구호를 내건 붉은악마, 태극기로 탱크탑을 만들어 입은 거리 응원단. 이 모두가 경악이자 탐구 대상이었다. 이들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386세대의 대표적인 문화 리더들이 모여 갑론을박을 벌였다.




황경신(황):‘W(월드컵) 세대’라는 개념 규정이 과연 가능한 걸까?

안이영노(안이):생물학적 나이로 세대를 구분하는 것은 우습지만 월드컵이라는 사건 자체의 트라우마(정신적 충격)가 워낙 크니까, 이런 사건을 함께 겪은 젊은 세대에게 공통된 관습 같은 게 생겨날 가능성은 있다.

김어준(김):10∼20대만을 월드컵 세대인 양 분류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에게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축제일 수 있다. 그렇지만 386 이상 기성 세대에게는 이것이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이번 월드컵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제고되고, 기업 마케팅에 도움이 되고, 그런 거 다 좋다. 그렇지만 내가 관심 있는 건, 일본에서 태어난 우리 아버지, ‘우리가 어떻게 일본을 이겨?’라는 말을 달고 살던 그이가 어느 순간 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한 바로 그 현상이다. ‘우리는 여기까지밖에 안돼’라고 기성 세대가 마음 한구석에 그어놓았던 한계선, 그것이 이번에 마구 깨져 나갔다.



안이:나는 본격적인 시민 사회 교육을 받은 첫 세대라는 점에서 월드컵 세대를 주목하고 싶다. 내 생각에 태극기 흔들고 경적 울리며 열광했던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하철에서 나와 거리 응원에 합류하러 걸어가기까지 과정이었다. 자기 방식대로 살되, 공동체의 놀이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자발성과 주체적 사고 방식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시민의 모습이 아닐까? 386세대만 해도 이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당시는 놀이가 아닌 대치 정국이었으니까.



황:그 아랫세대라고 자유로운 놀이 문화를 즐겨 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 또한 4∼5년 전까지만 해도 카페에서 춤추면 벌금을 내야 하는 억압적인 시대를 살았다. 그래도 이들은 체념해 왔다. 월드컵을 앞두고 떡볶이 노점상을 철거한다거나, 월드컵 기간에 헤드뱅잉(록 음악에 맞추어 머리를 흔드는 행위)을 금한다거나,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가 들려도 이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한국이 원래 그렇지, 뭐.’ 그런데 선수들의 투지가, 거리 응원의 열정이 이들을 바꿔놓았다. 이들은 이제 ‘이 나라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것이 이른바 ‘건강한 애국심’ ‘건강한 민족주의’로 이어질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김:거리 응원을 놓고 애국심 대폭발 어쩌고 하는 건 웃기는 얘기라고 본다. 세계가 놀란 선진 질서 의식? 월드컵 끝나면 사람들 다시 거리에 침 뱉고 휴지 버리고 할 거다. 월드컵이 우리를 질서 잘 지키는 민족으로 튜닝해 내지는 못할 거란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거대한 집단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났다. 기껏해야 양정모의 금메달 하나에 뒤집어지던 사람들이 4강 진출이라는 짜릿한 승리를 맛보았다. 여기서 느끼는 희열은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 본의 아니게 무리로부터 격리되어 뿔뿔이 흩어져 살던 동물이 자기 종족을 다시 만나면서 느끼게 된 안정감. 그리고 우리가 본래 강한 종족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데서 생긴 자부심. 이런 것들을 거리에 나가, 다른 사람을 통해 연장해 느껴 보고 싶었던 거다.



안이:그런 측면이 있는 거 사실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경쟁 관점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도 미국·일본처럼 잘사는 나라, 힘 있는 나라가 되자? 사람들의 의식이 이 정도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미래를 향한 중요한 아젠다를 놓치는 거다.





집단 콤플렉스 극복이 가장 큰 수확



김:그건 너무 이상론이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의 경쟁력을 실감한다. 똑같이 지도 한 장 갖고 낯선 유스호스텔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맨 먼저 숙소에 도착하는 사람은 당근 한국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경쟁력도 집단 콤플렉스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외국인이 길 물어 보는데 도망가는 거 한국 사람밖에 없다. 영어를 모르면 모른다고 하거나, 아예 외면하면 되지 도망은 왜 가? 그게 결국 우리는 열등하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가 드디어 이겼다. 물론 앞으로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축구에서건 뭐에서건, 우리가 한번 이겨 봤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길 수도 있다는 자신감, 이게 있음으로 해서 다른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젊은 친구들이 이번에 열광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본다. 386 세대만 해도 거리로, 시청으로 뛰쳐나온 경험이 있다. 끈끈한 공동체도 이루어 봤다. 그런데 지금의 10∼20대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페이퍼> 20대 독자 하나가 ‘나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더라면…’ 하고 부러움을 표시해 놀란 일이 있다. 또 한 독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월드컵에 열광한 것이 아니라 열광할 것 없는 현실에서 찾은 배출구가 월드컵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이번에 이들 스스로도 놀라며 발견한 자기 안의 폭발적 열정이 정치적·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그런데 월드컵 기간에 지자체 선거 투표율이 낮았다고 젊은 세대를 씹는 건 좀 웃기는 일 아닌가? 누가 운동회 날 반장 선거 하래?(웃음) 그래 놓고 누구한테 책임을 떠넘겨.

안이:‘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가 나올 때만 해도 이를 카니발 상황에서 가능한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를테면 정몽준씨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나는 대통령을 뽑으면서 자질 대신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노무현이 고졸이어서 학벌 타파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지지한다? 이거 웃기는 얘기 아닌가. 정씨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렇다고 ‘축구 인기를 업고 대통령에 출마해?’라는 식으로 그가 등장하는 것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 또한 폭력적인 발상이다.



황:축구에서 말고는 제대로 검증된 바 없는 정몽준씨를 대통령감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젊은 사람들이 그만큼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반증 아닐까? 누구를 뽑아놓아도 어차피 엉망진창이니, 축구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을 밀어주자. 뭐, 이런 정서 말이다.

김:나는 이번에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엘리트 그룹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이 사회의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국제적인 수준에서는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이번에 심판 오심 시비가 불거졌을 때 그들은 무엇을 했나?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거품 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그 나라에서는 축구 그 자체가 엄청난 쇼 비즈니스니까. 한국 같은 나라에 졌다 하면 여기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테니까. 다른 나라 언론은 이를 심심풀이 삼아 보도하면 그만이다. 억울한 건 결국 우리다. 우리 결백을 입증해 줄 것은 우리밖에 없다. 그런데 주류 언론 중 이런 일을 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DJ 정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강단 있는 말을 내뱉던 <조선일보> 김대중 편집인도 이 문제에는 함구했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부당함을 항변하거나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 회견 한번 연 일이 없다.






안이:어쨌거나 월드컵 세대가 이끌어갈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우리 사회는 달라졌다. 단순히 소비 문화나 대중 문화가 발달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종의 대자적 감각이라 해야 할까? 누군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감각, 이런 것들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관습이나 사고방식이 형성됐다. 월드컵은 이를 훨씬 더 확장해 놓을 것이다. 386세대 부모의 손에 이끌려 거리 응원을 나온 아이들은 놀이나 여가에 대한 관념,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에 대한 관념, 국제 도시 서울에 대한 이미지, 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황:4강전 이후 대여섯 살 먹은 어린애들이 길거리에서 장난감 나팔 소리에 맞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놀이를 하는 걸 보며 ‘이 나라에서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우리 세대는 일본 노래에 맞춰(그때는 일본 노래인 줄도 몰랐지만) 고무줄을 하며 자랐다. 이것이 우리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남아 영향을 미친 걸 생각하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분명 행복한 경험을 갖게 된 셈이다.



균형 잡기까지는 ‘오버’해도 무방해



김:월드컵 이후 우리의 집단적 멘탈리티에는 거대한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거리 응원단이 ‘Korea’ 대신 ‘Corea’로 표기한 깃발을 들고 나왔던데, 지금 우리에게는 뿌리 깊은 일본 콤플렉스를 극복한 데서 나아가,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십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식의 팽창적·공격적 국수주의로 흘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우리는 매 맞는 아내처럼 자기가 맞는 이유를 합리화해 왔다. 이를 벗어나 균형을 잡을 만큼까지는 어느 정도 ‘오버’해도 된다고 본다. 독일전에서 패하던 날, 우리 선수들은 단 한 사람도 웃지 않았다. 나는 선수들이 가장 정직했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승리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언론들은 ‘잘 싸웠다. 그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려 드는가. 이것은 위로가 아니다. 월드컵 세대가 듣고 싶은 말, 진정한 위로는 바로 이것이다. ‘독일, 4년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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