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거리 시민에게 돌려주자”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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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광장 활용 방안 쏟아져…필요할 때 펼치는 ‘보자기 마당’ 제안도
월드컵 축구대회가 막을 내린 지 1주일이 지났지만, 그 잔상은 아직도 강렬하다. 일부에서는 축제 후유증, 금단 증세라고까지 부른다. 지난 6월 한 달, 서울 광화문과 시청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는 연인원 2천만명. 정작 놀란 것은 전세계의 매스컴이 아니라 붉은악마와 한국인들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이런 역동성이 있었단 말인가?’ 월드컵 축구대회가 막을 내릴 즈음, 지식인 사회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이른바 붉은악마 현상을 분석하고 이것을 생산적인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와 민선 3기 시장을 맞이한 서울시가 내놓은 청사진이 눈길을 끌고 있다. 시민단체와 시청의 제안서에는 ‘자동차에게 빼앗긴 거리를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공통점이 있다. 붉은 티셔츠를 입지 않고도 축제를 즐기자는 것이다.


문화연대는 지난 7월3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종로를 문화 광장으로 탈바꿈시키자는 마스터 플랜을 제시했다. 월드컵 후유증을 진보적이고도 생산적으로 전환하자는 정책 제안이었다. 세종로 문화 광장 조성 계획은 ‘포스트 월드컵 문화 사회 만들기’의 첫걸음이다. 강내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중앙대 교수)은 선언문에서 “1987년 시청앞과 광화문 일대에 운집했던 군중이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했다면, 지난 6월 그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문화의 민주화’를 요청했다”라며 이번 월드컵 열기가 불연속성과 특이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연대가 월드컵 열기를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기간에 표출된 열망을 사회적 진보의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스포츠 상업주의·국가주의·전체주의 등으로 기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강위원장은 선언문에서 세종로 문화광장을 조성하는 중·장기 계획을 즉각 수립하고, 문화 교육의 이념과 정책을 수용한 8차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한편, 관 중심의 축제 행정을 민간 참여 중심으로 개혁하라고 주장했다.


문화연대가 내놓은 세종로 문화광장은 3단계로 추진된다. 정기용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위원장(건축가)은, 이번 거리 응원과 ‘지구의 날’(4월23일) 행사에서 확인했듯이 세종로를 차 없는 거리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종로는 길이 600m, 너비 100m. 정위원장은 우선 현재의 주변 상태를 그대로 두고, 세종로의 가운데 부분(너비 50m)만을 차도로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세종로 좌우에 길이 600m에 이르는 상설 광장이 생기는 것이다.




1단계 문화광장 조성에 이어 세종문화회관 이면 도로와 교보빌딩·미국대사관 이면 도로를 일방 통행 방식으로 전환하여, 세종로 전체를 차 없는 광장으로 상설화하는 것이 2단계 계획이다. 이어 세종로 주변의 정부종합청사·미국대사관·문화부 건물은 물론 기무사·청와대 건물 등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 시설들을 개조하여 국립중앙도서관·국립현대미술관·국립영상아카이브·조선왕조박물관 등으로 전환해 이 일대를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앙문화지구로 조성하자는 것이다.


한편 서울시는 오는 10월 말까지 서울 시청 앞 광장 일부를 시민 광장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위 사진 참조). 문화연대와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했지만, 자동차 소통을 우선하는 쪽에서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세종로와 시청앞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움직임은 일단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견도 만만치 않다. 거리 응원에 대해 좀더 정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는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붉은악마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함씨에 따르면, 그들은 팬이면서 동시에 스타인 ‘다면체’였다.


“공간보다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다”




6월의 거리 응원은, 스펙터클 사회의 한 절정이었다. 사물뿐 아니라 스포츠 경기, 테마 파크 등 ‘볼거리’를 상품화하는 스펙터클 사회에 길든 시민들은 응원 자체를 스펙터클로 만들어버렸다. 거리 응원이 펼쳐질 때 시청앞이나 광화문은 광장이라기보다는 무대(극장)였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스펙터클이었다. 축구(승리 지상주의와 결합한 민족주의), 선수(스타), 징크스(‘응원 방식이 승패를 좌우한다’), 자본(광고), 전광판(미디어), 교통 통제(국가) 등이 복합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스펙터클이었다. 그리고 그 스펙터클이 대중 매체에 의해 실시간으로 반복 중계되면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계몽’되었다.


응원단, 응원이 이루어진 공간의 성격을 파악하지 않은 채,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문화가 이루어진다는 환경 결정론을 펴는 것은 지나치게 기계적이다. 건축 비평가이며 <공간> 편집주간인 이주연씨는 “시청앞에 녹지 공간을 마련한다고 시민들이 모일 리 만무하다. 그 공간에서 일상적이고 문화적인 행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건축가 함성호씨는 시민단체와 시청의 제안이 자칫 ‘보행자의 섬’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경제성·활용도·교통 문제를 고려할 때 상설 광장보다는 ‘보자기 광장’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에만 교통 등을 통제해 광장을 보자기처럼 펼치자는 것이다.


문화연대가 내놓은 세종로 광장 안이나 시청의 시민광장 계획은 자동차(정치·경제 논리) 중심에서 시민(문화)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받고 있지만, 더 다양하고 충분한 의견 수렴이 요구되고 있다. 한 중견 건축가는 “전세계 건축가와 도시계획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계안을 공모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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