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정국 감독 <채널 69>
  • 吳允鉉 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국 감독 <채널 69> “기득권 세력의 위선 발가벗기겠다”
이정국 감독(39)은 한국 영화사에 몇 가지 ‘신화’를 만들었다. 80년대 중반 중앙대 연극영화과 시절에는 <백일몽>과 <한여름 낮의 꿈>을 한국 단편 영화의 고전으로 남겼다. 90년에는, 당시로서는 접근하기 힘들었던 광주 문제를 <부활의 노래>에 담았는데, 충무로 시스템이 아닌 독립 영화여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94년에 처음으로 상업 영화 <두 여자 이야기>를 만들어 신인 감독에게 인색한 대종상의 최우수 작품상과 신인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가 찍은 영화가 이처럼 눈길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리얼리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시대와 인간을 새로운 영상 언어로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한 시대를 이끌어갈 수는 없어도 시대 정신을 반영해 감동과 상상력을 추구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9시 뉴스 시간에 난데없이 섹스 영상이

단편 영화로 현대인의 내면 세계를 탐사했고 <두 여자 이야기>로 서정적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제시했던 그가 2년 간의 침묵을 깨고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멀티 미디어 시대의 욕망과 위선을 정면에서 공격하려 하는 것이다.

1월 말 촬영에 들어갈 <채널 69>는 컴퓨터 문화에 길든 세 젊은이가 권위주의적이며 위선적인 기성 세력에게 ‘전파 테러’를 가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반골 기질의 기자와 천재 해커, 그리고 포르노 배우 지망생이 ‘채널 69’라는 해적 포르노 방송국을 만든다. 그들은 정규 방송 9시 뉴스에 난데없이 포르노를 띄워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맛보기. 그들은 ‘특집’으로 실세 정치인의 섹스 행각을 내보내 정치권과 시청자들을 경악시킨다. 검경 수사대는 그들을 붙잡으려 하지만 그들은 방송 설비를 대형 트레일러에 싣고 이동하면서 공중파와 케이블 텔레비전에 포르노를 띄워올려 기득권 세력의 허위 의식을 계속 고발한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포위망은 점점 좁혀진다.

<채널 69>는 에로티시즘과 첨단 매체를 동원한 블랙 코미디이다. 이정국 감독은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위선을 발가벗기면서 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풍경화를 펼쳐 보이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이감독은 빠른 템포의 영상을 좋아하는 신세대 감각에 맞게 일부 장면은 뮤직 비디오 형식으로 찍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컴퓨터·이동통신 등 첨단 매체를 활용하기 위해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코디네이터가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한다.

영화 배우 홍경인의 탈바꿈도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불 같은 연기를 펼쳐 춘사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 주연상을 받은 홍경인은 이번에는 천재 해커 역을 맡아 열연한다.

이감독은 <채널 69>를 찍고 나면 스릴러와 역사물로 변신을 거듭할 생각이다.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는 것은 인간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학습 과정이다.” 그는 자기 영상의 종착지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인간의 본질임을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