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소설가 이제하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7.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갑 맞아 소설전집 펴내는 이제하씨
서울 북한산 기슭, 평창동에 있는 이제하씨의 작업실은 젊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방이다. 이 사랑방에는 시인과 소설가는 물론이고 화가 가수 만화가 방송작가 프로듀서 출판인 등이 수시로 모여들어 캔맥주를 마시며 밤새도록 기타를 퉁기기도 한다. 저마다 난다긴다 하는 이 젊은 예술가들이 오랫만에 스승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지난 6월24일 저녁 조촐한 회갑연을 마련했고, 기념 문집 <질주>(열림원)를 헌정한 것이다.

회갑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계간지 <문학동네> 여름호에 장편소설 <모래틈>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신작 그림소설 <뻐꾹아씨, 뻐꾹귀신>(열림원)을 펴냈으며, 무엇보다 모두 12권으로 완간될 이제하소설전집이 <열망>(전 2권·문학동네)을 필두로 출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후배들이 차려준 잔칫상 앞에서 “계면쩍을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3 때부터 시인이었다. 피난지 대구에서 발행되던 유일한 학생 잡지 <학원>에서 주관한 제1회 학원문학상에 당선된 ‘스타’였다. 홍익대 조각과에 재학 중이던 57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시인이 된 그는 이듬해 다시 소설가로 데뷔, 한국 소설문학사에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지평을 열어제쳤다. 그는 또한 화가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서양화과로 편입했다가 4학년 1학기 때 자퇴해 버렸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첫 미술 전시회는 82년에 열었다).

“시간이 이제 쩍쩍 달라붙는다”

이제하씨는 “시간이 이제 쩍쩍 달라붙는다”고 말했다. 당초에 환갑도 그냥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다. 청바지를 즐겨 입고 후배들과 밤새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스스로를 청년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후배들이 전집이다, 기념 문집이다, 회갑연이다 들썩이는 바람에 부쩍‘나이와,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의식하게 되었다.

기념문집 <질주>는 60년대 초반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소설가 김채원씨를 비롯해 구효서 윤대녕 성석제 씨 등의 소설과, 시인 최승호 김혜순 남진우 황인숙 장석남 씨 등의 시, 김정환 김형경 씨 등의 산문, 그리고 김준오 서정기 씨 등의 작품론이 실렸다.

평창동 사랑방 손님들이 참여한 이 기념문집은 한국 문단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책이다. 학연이나 지연 등을 중시하는 세태에서 벗어나 오로지 한 ‘매혹적인 예술가’에 대한 존경에 의해 기획된 문집이기 때문이다.

이제하씨에게 올해는 회갑일 뿐만 아니라 문단에 나온 지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한데 그가 평생을 이끌고 온 테마는 아웃사이더와 샤머니즘이다. <유자약전>에서 최근에 나온 <열망>(원제 <광화사>)으로 이어지면서 한 경지를 이루고 있거니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웃사이더들은 거개가 예술가들(화가)이다. 이 국외자들은 근대화·산업화로 표상되는 과도기적 사회와 첨예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로 대표되는 샤머니즘 계열의 작품은 난해해 보인다. “미술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나는 처음부터 합리주의와 이성에 호소하지 않았다. 내 소설이 난해해 보인다면 그것은 샤머니즘 때문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는 <초식>에서 그렸다시피 정치적 폭력에서부터 최근 횡행하고 있는 자본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모든 억압과 인습을 샤머니즘이란 렌즈를 통해 해석하고 있다.

올해 초 매킨토시 컴퓨터를 들여놓은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울 때가 많다. 컴퓨터로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도 한다. 이번에 나온 전집의 표지와 신작 그림소설의 일러스트도 그 컴퓨터를 통해 나온 것이다.

그동안 출판사와 약속해 놓았던 ‘글빚’을 다 청산하고 전시회도 연 다음에 그는 자신의 글과 그림이 들어가는 어린이 책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