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희경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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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펴낸 소설가 은희경씨
소설가 은희경씨(39)의 소설을 읽으면 우선 통쾌한 맛이 있다. 갈등과 고통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구성하는 자잘하고 섬세한 감정의 떨림들.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작품 세계는 자칫 지루하고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은희경씨는 그것을 재미있고 경쾌한 이야기로 바꾸어 버린다. 여기에 동원되는 장치는 역설. 얼마 전 그가 펴낸 두 번째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문학동네)에도 역설의 힘이 살아 있다.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치환하는 역설의 미학

그의 소설은 단정한 문체와 섬세한 내면 묘사로 남녀 간의 사랑과 인간 관계를 그리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몇 마디 말로 요약된다. ‘환상 깨부수기’ ‘까놓고 말하기’. 결국 삶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마지막 춤은…>에서도 인물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은씨 특유의 냉정한 시선이 그대로 견지된다. 이같은 점에서 <마지막 춤은…>의 주인공 진희의 삶은, ‘열두 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며 세계와의 관계를 냉소적으로 설정했던 <새의 선물> 진희가 30대로서 살아가는 방식으로 읽힌다. “환상 깨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마지막 춤은…>의 진희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는 셋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애인이) 셋 정도면 느긋한 마음으로 일이 잘 안될 때를 대비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가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없애는 동시에 고통스러운 결별(삶)을 이겨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랑에 누구보다 목말라 하면서도 그것을 끝내 밀어내는 이같은 역설이 <마지막 춤은…>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주인공의 삶의 철학인 것이다.

주인공은 말한다. ‘살아볼수록 인생은 상투적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흔한 일만 일어난다. 자기 자신에게는 대단한 사연일는지 몰라도 세상 전체로 보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과의 관계와 사랑이라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작가는 주인공 진희를 통해 그것을 끊임없이 가볍게 만들어 간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사람은 숙명적으로 삶이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볍게 살아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가볍게 살고 싶다. (그러나) 아무렇게라는 것은 아니다.’

“핵심에 단번에 도달하기 위해 역설을 사용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희망을 주는 한 방법이다”라는 작가는, 복잡한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짧은 문장의 단정적인 어법을 주로 이용했다. 문체에도 역설이 도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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