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옛 지도에 찍힌 ‘꼬레아’의 자취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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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유러피안의 상상…’ 특별전
옛지도를 볼 때면 지도는 당대의 세계관을 담은 그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15세기 초 조선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중국은 세계의 정가운데에 절반을 차지하는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중국의 좌우에는 한반도와 아라비아·아프리카 대륙이 비슷한 크기로 ‘붙어’ 있다. 유럽은 아예 없다.

유럽의 옛 지도는 반대다. 그리스 최초의 지리학자 헤로도토스가 만든 세계 지도에는 에게 해 주변만 나와 있다. 중세 유럽의 지도는 아예 추상적인 상상도에 가깝다. 측량 기술이 발달하고 탐험과 대상(隊商)들의 활동이 시작된 15세기에 와서야 유럽인들은 지도에 지리학 성과를 구체적으로 담기 시작했다.

그러면 유럽인들의 눈에 한반도는 어떻게 보였을까. 16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아시아 지도에는 중국이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일본 열도는 연 꼬리처럼 길게 늘어선 섬 조각 형태로 등장한다. ‘꼬레아’는 이보다 늦은 1595년 네덜란드의 랑그렌이 제작한 지도에 첫선을 보인다. 새우 모양으로 생긴 일본 열도와 중국 대륙 사이에 낀 둥그런 섬 형태다. 둥글거나 길쭉하거나 세모꼴 등 되는 대로 그려지던 상상 속의 나라가 실은 섬이 아니라 반도라는 점이 인식된 것은 이후 60년이 지난 뒤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서양 고지도 특별전의 제목이 ‘유러피안의 상상, 꼬레아’(9월1일~12월26일, 724-0114)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유럽인들이 한반도를 비교적 똑바로 알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지리학자 당빌이 1737년에 완성한 <조선왕국전도>가 최초의 한국전도로, 지형·산세·수계 및 경도·위도가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중 국경을 지금보다 만주 쪽으로 더 올려서 압록강 북쪽 지역에 그려 놓았다는 점이다. 이 지도는 청나라 강희제 시절의 실측 지도인 <황여전람도>를 바탕으로 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김양균 학예연구사는 “한·중간 국경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논란을 제기할 수 있는 자료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시되어 있는 옛 지도 속에서 우리 나라는 까올리(Caoli), 조선국(R. DR Tiocencouk), 꼬레(Core′e), 꼬레아(Corea)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다. 동해의 명칭 변화 과정도 볼 수 있다. 16~17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대부분 동해를 ‘동해(Oriental Sea, East Sea)’로 표기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바다라는, 그야말로 ‘동쪽 바다’라는 뜻이다. 18세기 이후 더 많은 정보들이 전해진 뒤 동해의 명칭은 한국해(Sea of Korea)나 일본해(Sea of Japan)로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이때 일본해보다는 한국해라는 표기가 많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번에 공개된 지도들은 불문학자인 서정철(외국어대 불어학과 명예교수)·김인환(이화여대 불문과 명예교수) 씨 부부가 30여 년 동안 모은 것이다. 1970년대 초 프랑스 유학 중이던 서교수가 베르사유 궁전의 루이14세 응접실에서 동해(Mer Orientale)라고 표기된 지구의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 부부는 서울 강남 땅 한 평이 4만원 하던 시절에 2백만~3백만 원씩 하던 옛 지도 1백50점을 사 모으느라 한 사람의 월급을 몽땅 털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 평생 수집품을 서울역사박물관에 모두 기증했고, 박물관측은 1년여 연구·조사 과정을 거친 후 9월1일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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