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미국인의 본질 꿰뚫다
  • 박영택(미술 평론가, 경기대 교수) ()
  • 승인 2005.01.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세기 대표 작가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
몇년 전 자동차를 빌려 미국 횡단에 나선 적이 있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2주 동안 힘들지만 매력적인 여정이었다. 그 길 위에서 틈틈이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읽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미국 문화를 프랑스인 특유의 사변적인 문체로 훑어나간 책이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문득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포착한 미국인의 삶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리운 사진 말이다. 모든 책이나 문장, 논리를 죄다 암전시키면서 미국과 미국인이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묘파한 그의 사진들은, 사진이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새삼 각인해 주었다.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이 서울 인사동 김영섭사진화랑(2005년 3월3일까지, 02-733-6331)에서 국내 최초로 열리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프랭크의 사진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른바 영상 사진의 새 시대를 연 그는 20세기 후반 현대 사진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였다.

로버트 프랭크는 192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대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상업 사진가의 조수로 들어가 일하면서 취리히의 영화사에서 스틸 사진을 찍었다. 사진가 훈련을 마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직후 뉴욕으로 갔다. 그는 1953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로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았다. 프랭크는 아내와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유럽인의 시선으로 미국을 바라보았고, 그와 마주친 미국인들도 그를 이방인으로 대했다.

2년여에 걸친 여행은 2만8천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그의 사진은 미국 사회의 인종적·사회적 분리 현상을 그 어떤 사회학·인류학 보고서보다 분명하게 관찰해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 방대한 사진 중 83장을 뽑아 만든 사진집이 <미국인들(The Americans)>이다. 이 사진집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그의 이름을 현대 사진사에 남기는 대표 작품집이 되었다. 사진 작가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 책을 보고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문학적이며 우울하고 음산하며 냉소적

이번 국내 전시에는 이 책에 실렸던 사진 중 일부가 선보이고 있다. 그의 사진으로 인해 주체로서의 사진가 자신의 의식과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 행위가 재래적인 사진 기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대상을 인식하고 촬영한다는 것은 보는 이의 복합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다. 자아와 대상과의 대응관계가 논리적인 인과법칙으로 명쾌하게 추출해낼 수 없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것으로 파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의해 사진은 한순간의 인상을 넘어선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이 되었다.

그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속하면서도 에세이 성격을 띤 ‘픽처 스토리’에 해당한다. 다분히 문학적이며 우울하고 음산하며 냉소적이다. 그의 사진에는, 자신에 대한 의식 자체가 복합적이고 불안하기 때문에 자신과 남들의 관계나 사회적 연대의식에서 괴리되어 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의 시선과 마음이 묻어 있다.

그의 사진은 사적 현실이다. 개인적인 다큐멘터리로서 사적 진실을 피력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 세계가 외부 대상에 가 닿아 부서져 이룬 결정들이다. 그만의 거친 기법과 대상을 포착하는 속도감, 관조적이면서도 대상과의 벽을 허문 스타일은 이후 많은 사진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마도 현대 사진가 중에서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작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사진들은 단순한 재현이나 표현의 차원을 넘어선다. 복합적이고 심오하며 난해한 인간의 삶의 모순들, 에피소드, 아이러니, 난해함과 슬픔, 연민 등을 침묵과 함축적인 이미지로 보는 이에게 문득 안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