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세상을 갈아 마셔라”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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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없는 삶의 아픔 노래한 ‘달빛요정’ 이진원씨, 1.5집 내고 대중 공연 나서
지난 1월 중순 이진원씨(32)를 만나러 서울 홍익대 인근에 있는 한 건물 지하실로 들어섰다. 검은색 방음 시설로 사방이 도배된 10평 남짓한 방. 기타와 드럼, 신시사이저와 컴퓨터가 군데군데 늘어서 있었다. 검은색 점퍼에 주황색 니트 모자. 이씨의 모습은 침대에서 막 빠져나온 듯하다. “오늘이 며칠이죠?” 앉자마자 그가 먼저 물었다. 이진원씨에게 날짜는 큰 의미가 없는 듯했다. 하긴 오후에 일어나자마자 작업실에 나와 곡 만들고 연습하고 녹음하고. 먹고 자는 것 빼면, 지난 3년간 그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삶의 전부다.

이씨는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주인공이다. 밴드 이름은 1집 녹음 과정에서 만들었다. 그의 인터넷 ID ‘달빛요정’에 자신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역전만루홈런’을 덧붙였다. 당시 그는 프로듀서로 일하던 인터넷 음악 방송이 문닫는 바람에 백수였다.

그는 2003년 봄 이 특이한 이름으로 <절룩거리네> <스끼다시 내 인생> 등 ‘패배자 정서’가 물씬 풍기는 노래를 발표했다.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절룩거리네>)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 신문 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스끼다시 내 인생>)

“노래만 좋으면 하루에 한 장씩은 팔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6개월 정도 준비해 여기(지하 작업실)에서 1집 앨범을 직접 녹음했죠. 그런데 제가 돈이 있나요, 인맥이 있나요. 홈페이지(www.rockwillneverdie.com)를 만들어 앨범 주문을 받기 시작했어요.”

펑크와 포크를 섞어놓은 그의 1집 앨범에는 욕설과 비속어가 곳곳에 섞여 있다. 음악적 세련미는 허클베리핀이나 언니네이발관 같은 정상급 인디 밴드에 비하면 거칠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창작자의 진심이 담겨 있는 노래를 금방 알아보았다. 아무 전망 없는 실존적 삶의 아픔을 노래한 노랫말은 인터넷을 타고 급속도로 퍼졌다.

앨범도 한 장씩 팔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가수 신해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부터 판매에도 속도가 붙었다. 1년 만에 그는 손수 만든 앨범 1천6백장을 모두 팔았다. 지난해 4월부터는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정식 앨범을 출시해 4천장을 더 팔았다.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뚝딱뚝딱 만든’ 앨범 치고는 대박이었다.

내 팬들은 1.5집에 실망할 것”

그가 최근 1.5집 <소포모어 징크스>를 냈다. 다섯 곡만 담은 EP(미니 음반)다. ‘개 같은 이 세상을 갈아 마셔’라고 외치는 첫 곡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되>(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썼다)는 여전히 도발적이다. 하지만 나머지 네 곡은 1집에 비해 분위기가 훨씬 차분하다. 이미 만들어놓은 2백여 곡 중에서 말랑말랑한 것들로 골라 뽑았다.

“제 팬들은 대개 분노하고 해소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이들이죠. 1.5집을 들으면 실망할 겁니다. 사실 이건 2집 낼 돈을 벌려고 낸 거예요. 2집에는 러브송이 전혀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한 톤 순화시켜 만든 1.5집마저 1집처럼 대부분 곡이 방송 금지 판정을 받았으니, 그는 어쩔 수 없는 비주류다.

대신 그는 올해부터 지금까지의 ‘지하 생활’을 접고 대중 앞에 직접 설 예정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2월4일 서울 홍대앞 쌈지스페이스 공연을 시작으로 6개월 동안 서울·부산 등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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