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 문정우 (mjw@sisapress.com)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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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조회 때 운동장에 서 있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체육 선생님이나 교련 선생님한테 얻어맞아 가며 줄을 맞추는 것도 끔찍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일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같은 한국말인데 어쩌면 그렇게 재미없는 말만 골라서들 하시는지. 자기 피붙이보다도 더 제자와 평교사들을 사랑하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들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뵌 적은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2백번도 넘게 조회를 했지만 단 한번도 가슴에 와 닿는 훈화를 들은 적이 없다. 교장 선생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주변에는 이런 얘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런 연유로 교장단과 전교조 간의 갈등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전교조 편향적’이다. 물론 ‘좋은’ 교장 선생님도 있고 ‘나쁜’ 전교조 선생님도 있겠지만, 사태가 악화한 근본 원인은 교장단이 오랜 세월 제공했다고 본다. 지금 교단은 권위주의에 빠진 부모 밑에서 자라던 아이들이 반기를 드는 바람에 풍비박산이 나게 생긴 집안과 같은 꼴이다. 이런 집안에서는, 부모는 아이들이 구제 불능으로 비뚤어졌다고 한탄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말할 수 없이 무례하게 군다. 주변에는 매를 들어서라도 애들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으레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와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내놓는 정신과 의사들의 처방은 다르다. 의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가 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모의 태도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반드시 몇 가지를 고쳐 신뢰를 쌓아 가라는 것이다.

전국 학교장 5천여 명은 최근 전교조를 성토하기 위해 그들이 혐오해온 집단 시위를 하는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고야 말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교조부터 두들겨패야 한다는 ‘나쁜 언론’들에 현혹된 탓이다. 이래서는 절대로 ‘집안’이 편안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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