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양길승 드라마’
  •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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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보난자>, 학창 시절에는 <월튼네 사람들>이나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같은 외화를 하는 날이면 온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넋을 빼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하고, 스토리 전개가 속도감 있던지. 반면에 우리 드라마는 거개가 차마 봐주기 힘든 수준이었다. 시어머니가 착한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부잣집 부모가 가난한 집 자식과의 혼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짜증 나는 내용 일변도였다.

요즘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소재와 내용이 정말 풍부해졌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혼전 동거나 유부녀의 바람 피우기 같은 아슬아슬한 소재도 무난하게 소화해낼 정도가 되었다. 중국·홍콩·타이완 등 중국어권과 베트남·태국·필리핀·미얀마 등 동남아권을 넘어 콧대 높은 일본에까지 우리 드라마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수많은 아시아의 청소년들이 우리 드라마를 보며 자라나고 있다.

우리 드라마의 성공은 경제적으로 얘기하자면 내수 시장의 희생에 힘입은 것이다. 한마디로 수준 미달인 상품(드라마)을 국내 소비자가 불평을 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소비해준 덕이다. 그런 식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된 ‘메이드 인 코리아’는 적지 않다.

교통 사고만 났다 하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던 국산 자동차를 국내 소비자들은 세계 1위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감수하면서 줄기차게 타고 다녔다. 국내 소비자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 자동차업계는 국제 시장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국산 가전제품들이 세계 곳곳에서 호평을 받는 것도 ‘국산은 두들겨 패야 고쳐진다’고 불평하면서도 꾸준히 메이드 인 코리아를 고집해온 국내 소비자의 공이다.

어지간히 내수 시장이 참고 견뎌 주었는데도 여전히 싸구려만 만들어내는 낯 두꺼운 생산자도 있기는 하다.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다. 최근 SBS가 방영한, 청와대 양길승 부속실장이 출연한 몰카 드라마는 압권이었다. 이 드라마를 누가 촬영했는가를 놓고 여러 갈래 추측이 나돌고 있는데 그 어느 쪽이 사실이든 엽기이다. 우리 정치는 그야말로 소비자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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