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대한민국 탈출’
  • 정희상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3.09.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웬만하면 이민 오지 말라.” <시사저널> 문화부 차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봄 캐나다로 이민한 성우제씨가 1년여 만에 편집국에 보내온 체험담이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먹고 살 길을 찾아 3만여 명이 캐나다로 취업 및 기술 이민을 떠났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의 현실은 막막하다는 현지 소식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중산층의 ‘탈 한국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8월28일 국내 한 홈쇼핑 업체가 내놓은 ‘이민 상품’이라는 이색 아이템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방송 개시 80분 만에 캐나다 이민 희망자가 무려 9백83명이 몰려 매출 1백75억원을 올리고 조기 종영되었다. 이 날 팔려나간 상품은 2천8백만원짜리 기술 취업 이민, 8백50만원짜리 비즈니스 이민, 6백20만원짜리 현지 취업을 통한 독립 이민 상품이었다. 이민 상품을 산 10명 중 8명은 30~40대였다고 한다.

올해로 해외 이민 100주년을 맞은 데다, 국제화 시대에 사는 처지에 이민 자체를 무턱대고 사시눈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일단 한국을 뜨고 보자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의 뒤안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절망과 냉소도 스며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이민 상품 소동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기나긴 불황의 터널에서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들, 자고 일어나면 폭등하는 서울의 아파트값, 갈수록 허리가 휘는 사교육비, 끊일 날 없는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무한 정쟁 등이 ‘기회 있으면 한국을 떠나자’는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