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만’ 적나라하게 폭로
  • ()
  • 승인 1999.07.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을 통해 유고 전쟁의 진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내온 <시사저널> 보도[제504호]에 따르면, 세르비아계는 양민 학살을 한 적이 없고, 코소보 해방군(KLA)은 ‘미국이 키운 새끼 호랑이’이다. 즉 미국은 유고를 길들이고, 동유럽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양민 학살 사건을 조작(?)해 유고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소보 해방군의 경우, 세력이 지나치게 강해져 국제 테러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고, 그들이 마약 밀매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계 정세를 미국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꼴이다. 미국은 오만함과 힘을 남용해 많은 국가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다수 언론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유고가 잘못했다는 내용)만 전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저널>이 바른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김준태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국산 돼지고기 왜 수출하나

초점 ‘일등 돼지, 꼴등 정치(오른쪽 사진)’[제504호]를 읽고, 앞으로 한국인은 영영 국산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다이옥신이 든 돼지고기 파동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돼지고기가 수입되고 있다. 반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국산 돼지고기는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일반 국민으로서 그같은 무역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간 무역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왜 돼지고기를 내다 팔면서, 같은 돼지고기를 외국에서 사들이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국산 돼지고기를 국내에서 소비하면 위험한 외국산 돼지고기를 수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무역이라는 것이 원래 남는 것을 수출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몸에 좋은 돼지고기는 팔고 ‘죽음의 씨앗’을 잉태한 돼지고기를 수입하는 무역 정책은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채규정(충남 서천군 군사리)

희망을 주는 ‘조용한 혁명’

‘전남대·경북대 조용한 혁명’[제504호]은 망국병의 하나인 지역 감정 해소에 새로운 희망을 주는 기사였다. 영호남 학생들의 상호 교류는 그 어떤 구호나 정책보다 더 싱싱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작은 땅덩이 안에서 남북으로 나뉜 것도 부족해, 또다시 동서로 나뉘어 서로를 질타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해묵은 역사를 들먹이며 원인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전남대·경북대의 조용한 혁명처럼,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지역 감정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못했다. 이제 문은 열리고, 희망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지역 갈등의 골을 단단히 메우리라 믿는다. 학생들에게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학생 교류를 영호남 교류에 국한하지 말고 경기도-호남·강원도-영남·경기도-호남·제주도-충청도 교류로 널리 확산했으면 하는 것이다.

엄태원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몰락한 학문의 여왕 수학…’을 읽고

제504호 특집 ‘몰락한 학문의 여왕, 수학이 다시 뜬다’를 잘 읽었다. 인터넷이 사회 전반에 위력을 발휘하는 현대에 수학이 학문의 중심이 되리라는 점에 공감한다. 수학은 분명 사이버 세상을 떠받치는 중추 신경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수학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마당에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수학이 ‘두뇌 한국 21’ 같은 국책 사업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수학자에 대한 지원이 정책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21세기 정보 사회의 낙오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 뻔하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수학과를 졸업한 학생의 취업률이 다른 이공대 학과에 비해서 훨씬 떨어진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이렇게 기초 과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학이 천대 받는 분위기에서 누가 수학자가 되기를 바랄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정보 사회의 핵심 일꾼인 수학자를 양성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기업들도 수학과 출신에 대해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영찬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지난 30여 년간 ‘카오스’에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이다. <시사저널>이 ‘몰락한 학문의 여왕, 수학이 다시 뜬다’에서 수학의 오류와 위기에 대해 기술했는데, 문제는 수학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어 과학 철학 신학 등 모든 학문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현대 학문의 위기는 결국 현대 사회의 위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즉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병폐 들이 명확히 해결될 때, 학문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학문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믿는다.

백창기 (강원도 양구군 남면 용하리)

점점 흥미 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난을 늘 관심 있게 읽어온 독자이다. <시사저널> 제504호 ‘사람과 사람’ 역시 주의 깊게 읽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람과 사람’ 난의 재미가 부쩍 떨어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나는 그 원인이 이미 다른 지면에 소개된 사람을 소개하고, 또 별로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억지로 소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혹 <시사저널> 지면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보면 <시사저널> ‘사람과 사람’ 난은 분명 내용도 있고 재미도 있어, 쉬어가는 페이지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기자들이 좀더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람을 찾아낸다면, 옛날처럼 재미있고 흥미 있는 지면을 꾸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안순희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탄1동)

드라마 ‘인기 비결’ 잘 포착

제505호 문화면‘시청률 낮은 프로에 왜 골수 팬 몰리나’ 기사는 확실히 포착하기 힘들면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을 잘 짚어낸 기사였다. 나도 <순풍산부인과>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예전에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가졌었는데 정확하게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기사는 그와 같은 느낌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정확하게 펼쳐보였다. 시대 변화에 대한 영감을 주는 기사였다.

이현미 (경기도 일산 신도시 대화동)

나를 변화시킨 <시사저널>

처음 <시사저널>을 정기 구독했을 때는 솔직히 잘 읽지 않았다. 단지 ‘아까워서’ 기사 한두 꼭지를 읽고 치워버렸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차츰차츰 읽는 양이 늘어나, 요즘에는 거의 모든 지면을 읽고 있다. <시사저널>을 통해 내가 만난 것은 정치의 흐름, 세상 돌아가는 것, 다른 언론에서 쉬쉬 하며 다루지 않는 문제 들이다. 동기야 어찌 되었든 나는 <시사저널> 덕분에 조금이나마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인생을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시사저널> 기사를 읽고 세상 일에 대해 생각하고, 분노하고, 느끼고, 비판하고, 눈물 흘리고, 안쓰러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아등바등 일에만 매달려 살던 내가 ‘유식하게’ 변한다는 사실이 참 즐겁다.

이경희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1동)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