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용 없는 성장’ 시대 접어드나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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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계수 급락, 일자리 계속 줄어…산업구조 변동 등이 원인
한국 경제도 미국처럼 ‘고용 없는 성장’ 시대로 접어드는 것일까. 제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0년 고용표에 따르면, 모든 산업에서 10억원 어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고용자 수(취업계수)가 1995년 16.9명에서 2000년에는 12.2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같은 기간에 제조업은 8.6명에서 4.9명으로 절반 가까이나 떨어졌다.

1998년을 빼고 경제가 매년 성장했는데도 5년 동안 제조업 취업자 수가 87만6천명이나 줄어든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들이 사람을 줄이는 감량 경영에 몰두했고 생산 설비 자동화 등으로 생산성을 높여온 것이 제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여기에 산업 구조 변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을 많이 쓰는 전통 제조업이 퇴조하고 사람을 적게 쓰는 정보통신산업이 빠르게 떠오른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은 수출의 주력군으로 자리 잡았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취업계수와 취업자 수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취업계수는 1995년 10.1명에서 2000년 4명으로 주저앉았다.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4만3천명이 늘어났지만, 정부가 정보통신산업의 고용 확대에 온갖 정성을 쏟은 것을 감안하면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했던 셈이다.

반면 서비스업은 선전하고 있다. 서비스업 역시 취업계수가 25.7명에서 18.2명으로 내려앉았지만,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취업자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90년 46%에서 1995년 절반을 넘어선 후 2000년에는 60%에 육박하고 있어, 취업 구조의 서비스화가 급진전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업의 활약은 취업자 수에서도 드러난다. 1995∼2000년 제조업과 농업은 취업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서비스업만 홀로 75만명 늘어났다. 그나마 산업 전체의 취업자 수가 52만명 감소에 그친 것은 서비스업의 고군분투 덕택이다.
한국 경제에는 매년 20만∼30만명씩 청년 구직자가 생성된다. 고용 시장에 오륙도와 사오정, 삼팔선도 모자라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애태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해도 과거처럼 고용이 크게 늘지 않아 더욱 고민스럽다. 성장률이 1% 포인트 늘어날 때 1990년에는 11만2천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2000년에는 9만6천개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이 2000년대 들어 더욱 심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새해 벽두부터 김진표 경제 부총리는 ‘6% 성장론’이라는 다분히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며 일자리를 최대 35만개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투자 활성화다. 경제 성장의 삼두마차인 소비·투자·수출 가운데 취업 유발 계수가 가장 큰 것은 소비(24명)이지만, 정부가 투자(16.1명)를 앞세운 것은 소비를 인위적으로 진작할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가 본격 회복되어야 고용 효과가 큰 서비스업이 살아나고, 그래야 취업 전선에도 온기가 돈다는 얘기다.
공무원과 결탁한 컴퓨터 업계의 뇌물 비리는 새해 벽두에 전해진 또 하나의 우울한 소식이다. 서울지검에 따르면,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 IBM의 한국 현지 법인인 한국IBM 간부들이 2001∼2003년 입찰 담합과 금품 로비 등을 통해 정보통신부·국세청·대검찰청 등 9개 관청에서 6백60억원 규모의 컴퓨터 납품권을 따낸 것으로 드러났다. LGIBM·LG전자·SKC&C 등 15개 컴퓨터 회사는 한국IBM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입찰 들러리가 되었다.

컴퓨터 대기업들의 공격적 영업과 불황의 여파로 중소 컴퓨터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극심한 자금난에 내몰리고 있다. 2003년 말 시장 점유율 4위 업체인 현주컴퓨터가 사업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자 업계에서는 “현주 너마저!”하는 비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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