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찬 펀드가 실재한다면?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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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결론대로라면 민씨는 <시사저널> 취재 기자에게 방대한 분량의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얘기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민경찬 펀드는 정말 존재하느냐고. <시사저널>이 민경찬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에게 속아 쓸데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빚에 쪼들린 민씨가 채무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자신이 큰돈을 굴리고 있는 양 가장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때 마침 <시사저널> 기자가 덜컥 걸려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내린 결론이 이와 비슷하다.

물론 민씨가 단순 사기범일 수도 있다. 아무리 대통령의 사돈 집안 사람이라 해도, 수 차례 사업에 실패해 빚까지 걸머진 민씨에게 투자할 사람이 그리 많았겠느냐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수십 명에 달한다는 투자자 중 아직 단 한 명의 존재도 확인되지 않은 점도 그런 의심을 부채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씨 파동은 단순 사기로 마무리짓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나 많다. <시사저널>이 지난호 커버 스토리에서 취재 기자가 민씨와 나누었던 대화의 주요 내용을 날짜 순으로 공개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경찰의 결론대로라면 민씨는 <시사저널> 취재 기자와 만났을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정교하고 방대한 분량의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요즘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금융감독원은 물론이고 경찰의 진상 조사도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민씨가 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 <시사저널> 기자가 ‘지인’이라고만 밝히고 나흘 연속 유치장 면회실에서 민씨를 인터뷰했는데도 경찰은 까맣게 몰랐다. 민씨가 마음만 먹었다면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중요 자료를 빼돌릴 만한 여유가 있었다.

만약 민경찬 펀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투자한 이들의 면면이나 돈의 성격이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 투자자 명부에서 노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나 그 친척과 연결된 특정 지역 유력 인사의 이름을 줄줄이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권에 대한 보험용이라고 의심할 만한 돈이 끼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만하면 ‘충분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는 것’ 아닌가.

결국 민씨 사건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려 하는 검찰이 이 사건에 어떻게 접근해 갈지 지켜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짭짤한 부수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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