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악을 쓰고 배는 산에 오르고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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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 오른 배’. 눈길을 끌기 위한 차별화 전략으로 보인다.
지난 일요일, 탄핵 정국이 하도 어수선해 바람을 쐬러 나갔습니다. 일부러 여의도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고, 김포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달렸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탄핵 정국보다 시계가 뿌연 황사 뒤끝이 차라리 나았습니다. 굳이 마스크를 준비한 까닭은 먼지를 막겠다기보다는 ‘말’을 피하겠다는 묵언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초지대교가 가까워지면서 말을 하지 않는대서, 말 같지 않은 말을 듣지 않는대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 뚫린 4차선 도로 양쪽은 아우성이었습니다. 음식점과 카페, 카센터 등에서 내건 각종 간판이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습니다.

동막해수욕장 근처였습니다. 구불구불 옛길을 돌아 내려가는데, 불쑥 커다란 배가 나타났습니다. 공사 중인 건물이었습니다. 몇 주 전, 경기도 일산과 파주에서 본 ‘산에 오른 배’ 두 척이 떠올랐습니다. 동해안 정동진에도 ‘초호화 유람선’이 산에 올라가 있습니다.

건축 설계의 제1 원칙은 맥락이라고 들었습니다. 지형은 물론 주변 건물과의 조화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판도 간판이지만, 저 선박 모양의 상업용 건물은 맥락과 조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저 혼자 ‘튀고’ 있습니다. 남보다 목소리가 커야, 남보다 눈에 잘 띄어야 살아 남는다는 차별화 강박증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간판들은 서로 너무 강렬해서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배 모양의 카페는 혼자 너무 튀어서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맥락과 조화를 고려하지 않는 차별화는, 차별화가 아니고 폭력입니다. 초지대교에서 간판과 튀는 건물을 닮은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수구 대 개혁, 친노 대 반노, 민주 대 반민주…. 17대 총선이 아닌 ‘4·15 대선’입니다. 또 ‘말의 전쟁’이 불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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