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보며 화내지 않는 법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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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원을 비판하는 분들에게 맹수나 병균에도 생태계를 건전하게 하려는 천심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면 위안이 되려나.
민심은 천심이란 말을 흔히 쓰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처럼 묘한 뜻을 지닌 말도 없다. 결국 민심이라는 것은 때로 개개인이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사실 하늘의 뜻은 종종 인간의 욕심과 배치된다. 자연에 순응해 필요한 고기만 그때그때 사냥해 조달하던 인디언들과 달리 대량으로 목축을 하던 백인들은 아메리카 신대륙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곰과 늑대를 마구 도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인 가축을 잡아가는 곰이나 늑대를 이 세상에 보낸 하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 흉측하게 생겨먹은 짐승들은 인간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아름다운 사슴의 목줄을 잔인하게 끊어놓기 일쑤였다. 백인들이 사나운 사냥개를 앞세워 틈만 나면 곰과 늑대를 사냥하는 바람에 이들은 점차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미국인은 요즘에야 비로소 곰과 늑대가 왜 이 세상에 필요한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천적이 사라지자 초식 동물들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불어났고, 그에 따라 산림이 황폐해지면서 건조기만 되면 매년 대형 산불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천적이 병들고 약한 개체를 제거해주지 않자 초식 동물 전체의 면역력이 약해져 전염병이 번지면 대량으로 폐사하는 일도 벌어지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요즘 캐나다나 시베리아 지역에서 곰과 늑대를 들여와 야생 상태로 돌려놓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총선 막판에 다시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기사회생해 여의도로 돌아온 한나라당의 ‘공안파’ 정형근 의원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나타나 민주노동당을 대상으로 맹렬하게 색깔론을 펴고 있다. 민노당도 민노당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속한 한나라당이 중도화하는 것을 막아보려는 심산이다.

한국 정치를 다시 색깔 논쟁이라는 구태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정의원을 바라보며, ‘본래 그런 사람인’ 정의원 본인에게보다도 그를 뽑아준 부산 시민에게 화를 내는 이들이 많다. ‘민심이 무슨 얼어 죽을 천심이냐’는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맹수나 독사나 병균에도 생태계를 건전하게 하려는 천심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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