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는 것이 없는 나라의 ‘야비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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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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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면의 ‘인간마저 부수는 철거망치’[제290호]를 읽고 몹시 혼란스러웠다. 정말 이것이 오늘날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인가, 혹 오보는 아닐까.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무조건 막강한 물리력으로 밀어붙이는 현실이 허탈했다. 이런 비참한 정책의 밑바닥엔, 민심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특정 계층·사람들의 시대 착오적 발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인간의 가장 존귀한 성에 가해진 야비한 폭력이었다는 점에서 ‘악랄한 만행’이라고 생각한다. 언론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채 반쪽 보도만 했지만, 인권·여성 단체들의 궐기가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홍 철 (전주시 중앙동 1가 지메르 패션)

‘인간마저 부수는 철거 망치’를 읽은 후 분노가 치솟았다. 그전부터 철거반원들의 폭력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이처럼 합법적(?)으로 행해지는지는 정말 몰랐다. 예전에 외국에 머무를 때 어느 외국인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은 안되는 것이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되는 것도 없는 나라이다’. 그 말을 부정하려 해도 이토록 처참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정책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마윤철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삼성빌딩)

두려운 아버지와 미국의 남성상

제290호 ‘추락하는 남성, 날개도 없다’를 읽고 많은 부분 공감하였다. 나의 아버지상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머니가 수십 번 말해도 안되는 일이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고쳐진 적도 있었다. 집에 와서도 아버지는 우리들과 대화하기보다는 뉴스나 신문 보는 데 더 열심이었다. 입시에 쫓기는 중·고등학교 생활로 인해 아버지는 더 멀어져 갔다. 그렇게 자란 지금 우리 20대들은 어떤가.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못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화하기조차 꺼리는 실정이다. 지금의 젊은 부모들은 자기만의 생각·행동을 버리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돌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세대 같은 비극적인 부자 관계를 갖지 않을 것이다.

박혜성 (효성여대 노어노문학과 2년)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남성학을 공부(박사 과정)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제290호 ‘추락하는 남성, 날개도 없다’를 잘 읽었다. 그러나 기자가 쓴, 미국의 현대 남자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자아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 구미 남성들의 불행한 모습은 무기력, 물신 숭배주의, 도피성 동성연애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라는 부분과 ‘미국 남자는 많이 운다’라는 부분은 이곳에서도 많이 연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가능하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미국 남자들의 통곡과 미국에서 생각하는 미국 남자들의 통곡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현대의 미국 남자들은 무엇을 위해 살며 왜 무기력해지는지 등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

대일 릭비 (Cliff Drive Columbia, U.S.A.)

최저 임금 보장하고 인권 개선해야

제290호 커버 스토리 ‘한국에서 우는 아시아 노예’는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소규모 가내 제조업체에서 해안 양식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저 임금으로 3D 기피 현상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그러나 미숙련 단순 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산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강제 추방과 체포, 학대 등의 인권 사각 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세계화는 세계 의식의 함양과 인권과 복지의 상승을 의미할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최저 임금 `보장과 산재를 적용하고, 복지 시설 및 인권을 개선해 한국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짓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소정현 (전북 이리시 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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