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계, 환골탈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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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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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비리 원천 뇌물 먹이사슬’[제299호]은 실제 건축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기사였다. 언제부터인가 건설 현장에는 ‘부실 시공 추방의 해’ 같은 플래카드가 나붙기 시작했지만, 정작 현장을 얽어매고 있는 것은 복잡한 먹이사슬 구조이다.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부실을 낳는 비리는 이미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리 구조가 평소에는 아무런 규제 없이 관행적으로 진행되다가 사고가 터지고 나면 비로소 논의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아파트·백화점·공연장 같은 건물은 엄격한 법 적용과 사후 감독이 필요하다. 최근 문제가 되는 신도시의 경우도 뒤탈이 없도록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총체적 비리 구조를 지닌 한국 건축계는 이제 환골탈태해 새로 태어나야 할 시점이다.

정용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당동)

세계화가 국민 생명보다 중요한가

소방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119 구조·구급대 긴급 수술 절실’[제299호]을 관심 있게 읽었다.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 응급 체계가 외국에 비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대형 참사를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국민이 직접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정부에 구조구급과가 탄생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 기관이면서 예산 지원을 받기는커녕 사무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씁쓸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기구가 왜 이처럼 천대를 받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말로는 국제화·세계화를 외치면서 정작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외면하는 정부의 태도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정수 (전북 남원시 조산동)

광고까지 주의하는 세심함을

커버 스토리 ‘김대중 총재 대권 향해 돌진’[제299호]을 보다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우연이었겠지만 김씨가 입은 옷의 상표가 그 앞장에 실린 광고 제품과 같다. 김씨의 사진이 ‘상품 광고’의 연장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단순한 실수라도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지명도 있는 특정인이 입는 의류는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창해 (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

자가용 없는 사람도 독자인데…

평소 우리나라 고유 문화에 작으나마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이다. 제298호와 함께 보내온 <시사저널 라이프> ‘문화유산 길라잡이’를 반갑게 보았다. 그런데 요즘 승용차가 많기는 하지만, 이번 호는 자가용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시사저널 라이프>처럼 여겨졌다. 다른 일반 대중교통 이용 방법은 전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모든 계층에게 읽히는 것처럼 <시사저널 라이프>도 많은 사람이 읽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서연 (경남 울산시 남구 신정3동)

갈등 완충할 ‘성역’은 필요하다

김진석 교수의 ‘통속을 초월한 성역은 없다’[제298호]를 읽고 펜을 들었다. 김교수는 교회가 진부한 신학적 논리를 내세워 통속을 초월한 성역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오해며 선입견이다. 명동성당이나 조계사의 공권력 투입에 분노하는 대다수도 정부가 대화를 거부하고 힘의 논리를 앞세운 것을 비난하는 것이지 성소 유린 자체에 항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의미의 ‘성역’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합의된 갈등과 투쟁의 완충지대로서의 성역인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갈등 구조가 다원화할수록 그 필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신명식 (경기 안산시 본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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