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화면에 '네 꿈을 펼쳐라'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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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는 섶 위에서 자면서 원수를 되새겼고 월나라 왕 구천은 쓸개를 빨며 복수를 다짐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처럼 '살벌하게' 자기 최면을 거는 대신 핸드폰 초기 화면의 문구를 이용해 '센스 있게' 자기 암시를 걸고 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신문사는 최근 재학생 1백13명을 대상으로 핸드폰 초기 화면 문구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거창한 가훈·교훈·사훈과 달리 핸드폰 문구에 담긴 좌우명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관심을 반영한 소박하고 경쾌한 것이 많았다.


이성 친구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답게 연애에 대한 문구가 전체의 22%로 가장 많았다. '우왕 외롭다'고 하소연하는 학생, '건들테면 건드려봐'라고 준비된 솔로임을 밝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열면 사귄다' 'whiteday 요정' 등 이성 친구를 바라는 주문을 적어 놓은 학생도 있었다. 남자 친구의 호감을 사려는 듯 '선서, 운동해서 살을 뺀다' '쬐금만 먹어 쬐금만'이라고 다이어트를 다짐하는 문구를 적은 여학생도 있었다.


'좋을 때 그만' '오늘도 참는다' 등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거나 '나에게로 초대' '봄 햇살을 느끼며' '해를 등지고 싶다' 따위의 소박한 바람을 담은 문구를 적은 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 학생은 물욕을 드러내는 문구를 적어놓기도 했다. '책상 밑으로 숨어라' '잘 빠진 인삼 두 뿌리' '물방울 다이아 만 개' 등은 돈이 들어오게 하는 주문이다. 핸드폰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문 닫아라 춥다'(폴더형 전화기)라고 핸드폰을 몰래 쓰려는 친구를 점잖게 나무라는 문구도 있었다.


문구 중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담아 '개자식들'이라고 적은 학생도 있었지만 '내 멋대로 살자' '빡시게' '자신만만' '덤벼라 세상아!' 'Just do it!' 등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는 문구가 대부분이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초기 화면에서는 '(취재에는) 인정사정 없다' '(기사 마감이) 늦으면 죽는다' 정도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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