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믿다 발등 찍힐라
  • 이영탁 KTB 네트워크 회장 ()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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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낮은 것은 경제에 득이 되고 높은 것은 해가 된다는 이분법적 논리는 타당성이 희박하다. 지금은 저금리보다 구조 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더 급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금리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명목 금리만이 아니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금리 또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주요국의 실질 금리를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금리가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이나 경쟁국들에 비해 오히려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실질 금리는 콜금리가 0.6%, 회사채가 3.29%로 각각 일본(0.1%, 1.76%)보다는 높지만 미국(1.50%, 3.56%) 영국(3.05%, 3.51%) 타이완(5.12%, 6.46%)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과거 우리의 금리는 주요 선진국이나 경쟁국보다 지나치게 높아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이런 면에서 최근의 저금리 기조가 건전한 방향으로 형성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투자를 촉진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적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최근의 급격한 금리 인하 추세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 침체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전통 산업이나 IT 부문의 과잉 투자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저금리의 가장 큰 실익인 기업의 투자 촉진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의 침체 우려와 구조 조정 부진 등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아무리 낮추어도 경제 주체들의 위축된 소비·투자 심리를 회복시키기 어려워 금리 인하를 통해 의도하는 경제 활성화와 증권 시장 회복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더욱이 저금리가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인 기업 구조 조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낮아진 금융 부담으로 기업들의 구조 조정 의지를 퇴색시키고 당연히 퇴출되어야 할 부실 기업들의 생명을 연장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외환 위기 직후 한동안 강력하게 추진되던 구조 조정이 최근 들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들이 많다.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 매각,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등 주요 현안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실 기업들에 대한 정리 작업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구조 조정이 부진한 데에는 정부의 각종 자금 지원과 금융 완화 정책에 따른 저금리 현상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금리를 지나치게 낮게 유지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구조 조정을 신속히 과감하게 추진하고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확립함으로써 경제에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한 요소들을 줄여 가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낮은 금리 수준은 또한 소비 심리를 지나치게 자극해 무분별한 과소비를 초래하고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시중 자금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빠져나가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집중되면서 거품을 야기하고 투기 자금으로 변질될 우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따라서 적정 금리 수준은 통화량의 수급 상황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정부는 정책적 의도를 가지고 금리를 조절하기 위해 시장에 빈번히 개입하여 왔다. 그 결과 금리가 왜곡되고 가격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저해하여 우리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해온 측면이 많았다.


금리가 낮은 것은 경제에 득이 되고 높은 것은 해가 된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는 그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금리 수준이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여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그를 통해 본연의 자원 배분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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