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이주 노동자 그리고 노예 논쟁
  • 강수돌 고려대 교수·노사관계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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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반발하고 외국인 연수생 사용주들은 '우리는 노예주가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두 집단 모두 불평등·불공정 관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척결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MBC TV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 매거진 2580〉에서 연예인들이 기획사의 '노예'인 양 묘사되는 바람에 연예인들이 집단으로 반발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일부 기획사의 독단적 행위로 다수 연예인이 피해를 보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막상 피해 당사자로 묘사된 연예인들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저항하고 나섰다.




나는 약 50일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6월10일 일요일 밤에 KBS 1TV에서 〈취재 파일 4321〉이라는 방송이 나갔는데, 그 첫 내용이 한국 내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노동 및 생활 실태에 관한 르포르타주였다. 특히 불법 취업자로 추정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행이나 산재 등 비인간적 모습이 보도되었고, '왜 이런 불법 취업자가 양산되는가?' 하는 물음도 제기되었다.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 인력난으로 약 30만명이 필요한데도 합법적인 경로로는 5만명밖에 들어올 수 없어, 이주 노동자가 합법 취업할 기회가 너무 적다. 둘째, 연수생은 불법 취업자보다 오히려 임금이 적고 행동 제약도 있기에, 또 경우에 따라서는 기숙사에 갇혀 감옥 생활 비슷한 걸 해야 하고, 산재를 당한다든지 폭언·폭행을 당한다든지 하는 인권 문제도 있고, 이런 여러 측면에서 연수생이 불법 취업자로 이탈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요인이 있다. 그래서 연수생 기한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불법 취업자가 될 확률이 60% 가까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발언이 연수생 사용주들에게는 '현실을 심각히 왜곡하고' 사용주 모두가 '외국인을 착취한다는' 인상을 온 국민에 던져준 것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연수업체협의회 대표 28명 중 24명이 분개하여 내 연구실로 몰려왔다. 분위기가 대단히 위협적이었고 이성적으로 대화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극히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문제들로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한 세미나실에서 그 발언의 취지와 근거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사장들은 "왜 연수생 사용 업체들이 전부 인권 침해·저임금·불법 이탈의 주범으로 몰리게 발언했느냐?"라고 항의하며 내가 말한 근거 자료를 모두 부정했다.


연예인들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반발한 것에 비해 여기서는 연수생 사용주들이 '우리는 노예주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발한 점이 차이점과 유사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불공정 관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척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아니라, '최소한 나는 아니다'라는 식의 경험주의적·개별주의적 태도로 피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는커녕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게 될 뿐이다.


7월18∼21일에 기독시민사회연대 주관으로 동북아 이주노동자 포럼이 열렸다. 일본·홍콩·타이완·인도네시아·필리핀·방글라데시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가 수십 명이 참여하여 이주 노동자 중심의 풀뿌리 운동이 갖는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들어 더욱 침해받는 이주 노동자의 노동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나는 이런 '작은 연대'들이 모여 '더 큰 연대'로 이어지고 우리가 연대의 폭과 깊이를 더할수록 우리 마음 속의 두려움들이 더 많이 사라지고 사랑의 힘이 더욱 커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노예들이 노예주로 상승하거나 노예임을 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노예와 노예주가 맺는 '노예 관계' 자체를 철폐함으로써 모두가 사랑으로, 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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