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폰’은 충격의 서곡일 뿐
  • 김주환 (연세대 교수· 신문방송학과) ()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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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5일은 <동물농장> <1984년> 등으로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오웰은 소설 <1984년>에서 절대 권력을 위해 거대한 감시 체제를 유지하는 빅 브라더를 예견했는데, 이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 도래와 함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52개 시민단체는 지난주를 ‘빅 브라더 주간’으로 선포하고 정보 인권 지킴이로 나섰다. 각종 토론회와 행사를 통해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기관이나 인물에게 ‘빅 브라더 상’을 주자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 이처럼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경각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새로운 매체에 의해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할 위험이 계속 증대하고 있다.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일명 카메라폰)가 널리 보급되면서 몰래 카메라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행해진 어느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메라폰 소지자 중 ‘몰카’를 찍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15%를 넘어섰다. 몰카를 찍어 본 사람 중 40% 정도는 지하철에서 찍었다고 답했다. 두 번째로 몰카를 많이 찍는 곳은 목욕탕 탈의실(14.4%)이었고, 해수욕장·수영장 탈의실·스포츠센터 탈의실·수영장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23일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의 오·남용 방지를 위해 카메라폰 사진 촬영 때 빛을 발산하거나 신호음을 내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디지털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 등 유사 기기에 대해서도 오·남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메라폰은 디지털 미디어가 가져오는 더 근본적인 변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기본적인 발전 방향 중의 하나는 ‘몸 친화적인 것’으로 되어 간다는 것이다. 입는 컴퓨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게 될 것이다. 컴퓨터 본체는 허리춤이나 구두 밑창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모니터는 안경 형태를 띠게 될 것이며, 칩은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결국 몸의 일부처럼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선으로 인터넷에 항상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는 내가 보고 듣는 것을 순간적으로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게 하여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카메라폰은 경험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 그리고 내가 본 것과 다른 사람이 본 것의 구별을 점차 흐리게 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초보적 형태인 셈이다. 사실 아날로그 전자 매체의 기본적 기능 역시 내가 보고들은 것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반복해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몸에 지니고 다니는 디지털 미디어는 한 개인이 경험하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순식간에 저장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매체와는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언제든지 저장했다가 원하는 때에 재생할 수 있게 된다면 (카메라폰은 바로 이러한 상황의 극히 초보적인 단계일 따름이다) 어떠한 것을 경험하고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곧 그가 기억하는 것에 의해서 결정된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의 총체일 뿐이다. 그리고 기억은 걸러져서 저장된 경험이다. 따라서 경험하기와 기억하기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답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을 늘 실시간으로 저장하고 언제든 반복해서 재생해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추세로 보아서는 가까운 장래에 그러한 일은 분명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와 언제든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나라는 인간은 지금의 나와는 상당히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 기록해서 다른 이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된 문자의 발명에 비견될 수 있다. 문자 발명이 전혀 새로운 인간상을 형성시켰듯이 디지털 매체도 그 이상의 커다란 변화를 인류에게 가져오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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