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글과 그림으로 뭇새가 날아든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3.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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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민 지음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겸재 정 선의 <고산방학도>(위 그림 참조)라는 작품이 있다. 나무 등걸에 기댄 선비가 학이 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그림인데, 동양화가 으레 그렇듯 현실 풍경은 아니다. 학을 자식처럼 사랑한 중국 명나라 때 사람 임포가 손님이 찾아오면 뜰에 놓아 기르던 학에게 객을 모셔 오도록 했다는 고사(梅妻鶴子)를 그린 관념의 풍경이다. 하지만 그 관념의 풍경이 현실과 아주 단절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옛 사람들은 학을 잡아서 키우고 길들였다. 그러곤 ‘학이 있는 풍경’을 노래한 시문을 허다하게 쏟아냈다. 허 균의 경우에는 아예, 자신의 (상상의) 거처를 그려 달라며 어떤 화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주문과 함께 ‘학 2마리가 바위의 이끼를 쪼고 있는’ 장면을 넣으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정 민 교수(한양대)의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효형출판 펴냄)는 인문학(한문학)과 예술(그림), 자연과학(조류학)을 가로지르는, 새에 관한 ‘동양학 박물지’로 읽힌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거나 문화적 상징이 풍부한 새 36종에 얽힌 갖가지 흥미진진한 사연을 구수한 입담과 고전적 품격에 얹어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새와 사람’ ‘새와 그림’ ‘새와 문화’ 등 2권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그래서 ‘옛 사람의 문화 풍속도를 읽는 지름길’이 된다. 모든 길은 새로 통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제비는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知之 是知也 :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논어>의 한 구절)’라고 울고, 뻐꾹새는 ‘복국복국(復國復國)’ 울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해낸다. 수다스럽기로 유명한 꾀꼬리는 ‘농가에 오디 익고 보리 이삭 팰 때 초록 나무 숲속에서 이따금 노래한다’(임 춘). 요즘 유원지의 천덕꾸러기 정도로 전락한 비둘기가 사실은 18세기에 애완용으로 수입되어 사육되었고, 솔개는 병아리를 채어 간다고 해서 탐관오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백로는 선비가 간직해야 할 생각을, 파랑새는 민중의 희망과 좌절을 대변했고, 거위는 개를 대신해서 집을 지켰다.

새 소리 새 그림에 담긴 ‘한문학 콘텐츠’를 수집하고 해석한 저자의 공력은, 이제 그의 이름을 한문학 번역과 연구에 관한 한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일종의 ‘명품 브랜드’로 만든 듯하다. 한문학을, 한문학의 울타리 밖으로 끌어내서 다시 한문학과 얽는 저자의 학제간(學際間) 연구가 더욱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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