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참여’인가
  •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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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고 사람들은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하고 결과를 시정하는 데만 급급한 정책을 남발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참여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9개월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일부에서는,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노무현 정부의 출현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 이들은 ‘코드’니 ‘386’이니 하는 용어가 일상화하는 것에 더욱 실망했다.

참여정부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안 사태 등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참여라는 이름 아래 집단이기주의가 보편화하는 것을 방치해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가만히 있으면 바보’라는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부담 없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부가 집권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좋게 보면 현재의 난맥상은 결국 그동안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문제점들을 바로잡아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과도기를 지나 우리가 어디로 갈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어 이를 단순한 통과 의례로만 볼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기회 균등’ 아닌 ‘결과 균등’ 사회로 가려는가

지금의 국정 운영 과정을 돌이켜보면 ‘참여 정부’라는 구호 아래 정치 개혁이 모든 것에 우선시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탓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가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정치 개혁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집단을 앞세운 획일적인 평등주의가 강조되면서 ‘기회 균등’이 아닌 ‘결과 균등’이 중시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덩샤오핑이 ‘부자가 앞서고 이를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한 이후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과 정당한 과정을 거쳐 부자가 된 사람을 동일시하고 부자를 배 아파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경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린 학생들조차도 기업보다는 정부, 효율성보다는 형평성, 성장보다는 환경을 중시하는 편향적인 경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시장 경제 바로잡을 ‘게임의 규칙·벌칙’ 엄히 세워야

정부의 ‘시장 개혁 로드맵’이 재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전 정권의 유산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대책을 세우는 것이 늦어 아파트 가격은 오를 만큼 올랐다.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는 기업의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으며, 이 탓인지 세계적인 경기 회복 기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성장 가능성은 불투명해지고 있다. 가난 속의 평등이 우리가 참여해서 얻고자 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대내외적 상황은 안타깝게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시장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게임의 규칙과 벌칙’을 정해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고, 사람들은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이 평범한 경제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사후에 결과를 시정하는 데만 급급한 정책을 남발할 경우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참여자인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관치 차별화를 통해 고도 성장은 이루었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다수의 패자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영향 탓일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관치에 의한 평등화가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가 경제 성장 둔화로 나타나고 있다. 능력에 따른 불평등을 수용할 줄 아는 기업과 국민을 양성할 수 있는 시장 차별화 기능을 강화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한 경제학자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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