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대신 예술 판 일본 기생 이야기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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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미네코 구술·랜디 브라운 정리 <게이샤>
이글을 쓰는 기자는,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 남자다. 당연히 여자한테 관심이 많다. ‘전문적으로 노는’ 직업 여성들에 대한 호기심 또한, 당연히 크다. 총각 시절에는 데스크의 특명을 받아 전국의 홍등가를 기획 취재하며 혁혁한 문명(?)을 날린 적도 있다. 부족한 실전 경험을 벌충하느라 이 방면의 문헌들도 꽤나 섭렵했다. 덕분에,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옐로 주간지 <선데이 서울>을 비롯해, 이능화의 고전적 명저 <조선해어화사>에 이르기까지 성풍속의 뒷골목에 관한 한 제법 해박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게이샤로 꼽히는 이와사키 미네코가 구술하고 미국 작가 랜디 브라운이 정리한 <게이샤>(윤철희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는 일본 가류카이(花柳界) 이야기이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구술자의 도저한 자존심과 ‘우아한 추억’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다. 한많은 여자의 일생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직업적 자긍심이 대단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기’의 개념은 여기 틈입할 여지가 없다. ‘이론만 빠삭한’ 백면 서생은 결코 알 수 없는 세계랄까, 아무튼 이 책에 등장하는 게이샤의 세계는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파는 일본 예인(藝人)의 모습이다. 하기는, 우리 나라 여류 문학사를 보더라도, 그 주역들은,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정도를 빼면, 대개는 기류(妓流)이다. 중국에서 온 말이기는 하지만, 오죽하면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라고 했겠는가. 그녀들은 이른바 ‘상류층’의 파트너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천국의 계단>)나 장 콕토(<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일본 여행기가 게이샤에 대한 단순한 엑조티즘을 불러일으킨다면, 이 책의 게이샤는 거의 문화 사절 수준이다. 앞의 두 책에 소개된 일본 게이샤 문화가 색정가의 눈에 비친 그것이라면, 이 책의 게이샤는 한층 격조가 높다. 그녀들은 영국의 찰스 왕세자를 접대하고, 일본 재벌들의 일등 며느리감으로 꼽히며, 수입 또한 엄청나다. 구술자 이와사키 미네코에 따르면, 게이샤의 세계는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데 존재의 의미가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특별 구역”으로 “일본 문화사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을 차지한다.”

최고의 게이샤였던 구술자가 내비치는 당당한 자존심과, 글쓴이의 조금은 과도해 보이는 일본 취향이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국적을 막론하고 화류계 소식이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할 만하다. 가난 때문에 게이샤로 팔려가지만, 혹독한 수련(구술자는 성악가나 발레리나의 훈련 과정 못지 않다고 말한다)을 거쳐, ‘완벽한 게이샤’로 교토 유흥가를 주름잡다가, 스물아홉에 은퇴하여 결혼해서 사는 구술자의 삶은 그냥 그런 천박한 호기심의 대상만은 아닌 것 같다. 절절한지, 엿보기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사족 하나. 제임스 딘이 주연한 <에덴의 동쪽>을 연출했던 엘리아 카잔 감독이 일본에 가서 게이샤 체험을 했다. 구술자와 카잔 감독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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