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하타 야오스 감독 <철도원>
  • 魯順同 기자 ()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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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철도원>/전후 세대의 애환 잔잔히 그려
베스트 셀러는 대중의 감성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이 경우 작가의 의도보다 작가와 대중의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대목을 더듬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효율적이다. 설 대목용으로 극장에 선보이는 일본 영화 <철도원>(연출 후루하타 야스오)도 그런 예에 속한다. 아사다 지로(상자 기사 참조)의 동명 단편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지난해 6월 일본에서 개봉되어 4백50만명을 끌어모았다. 소설 <철도원>의 이력도 화려하다. 1997년 다쿠가와 상과 함께 2대 문학상으로 일컬어지는 나오키 상을 받았는데, 당시 일본인의 혼의 근저에까지 도달했다는 심사평을 얻었다.

한국에 도착한 아사다 지로는, 19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시작된 일본 문학 열풍의 맥을 잇고 있지만, 무라카미 류·요시모토 바나나로 이어지는 신세대 작가와 노선이 확연히 다르다. 문학 평론가 신수정씨는, 아사다 지로 문학의 풀이말로 ‘감동’과 ‘복고주의’를 꼽는다.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철도원>이야말로 고도 성장 사회 일본이 문학에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포착했는데, 규율과 조직으로 둘러싸인 사회일수록 문학은 영원히 변치 않을 ‘인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마지노선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복고주의도 이런 경향을 거든다. 고속철 신칸센이 달리는 시대인데, 증기 기관차에 대한 향수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그 향수는 퇴영적일 뿐 아니라 음험한 것일 수 있다. 신씨는 “홋카이도에 증기 기관차가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좋았던 과거’란, 눈의 나라 홋카이도가 근대적 식민 사업의 전초 기지 노릇을 담당하던 시기와 구별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철도원>의 주인공은, 정년을 앞둔 시골 역장 오토마쓰다. 그는 결혼한 지 17년 만에 가까스로 아이를 얻었으나, 그 아이는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허름한 역사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감기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오토마쓰는 아내와 딸을 기차에 실어 보냈는데, 그날 저녁 딸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참을성 많은 아내마저도 그를 원망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철도원이라 어쩔 수 없네. 내가 홈에서 깃발을 흔들지 않으면 누가 기차를 유도할 텐가. 전환기도 돌려야 하고,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면 돌아올 텐데.” 15년 후 그는 역사를 지키느라 아내의 임종마저 놓친다. 그로부터 2년 후 정년 퇴임을 앞둔 새해 어느 날. 회한에 사로잡힌 그 앞에 낯선 여자 아이가 찾아온다. 그 아이는 꼬마로, 그의 언니로, 다시 열일곱 숙녀로 거듭난다. 딸 유키코의 환영이다.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찾아온 딸은 ‘아버지가 철도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고 오토마쓰를 위로한다.
지난해 일본에서 4백50만명 관람

이처럼 <철도원>은 기차에 꿈을 실었던 동시에 그 기차에 몸이 매어 있어야 했던 세대에게 바치는 살뜰한 헌사다. 감독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 후루하타 감독에 따르면, 오토마쓰는 일터에서 쫓겨나는 일본의 나이 든 세대의 모습이다. 정리 해고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회학적인 분석이 작품론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 <철도원>의 섬세한 솜씨는, 관객으로 하여금 ‘혐의 따로, 감동 따로’라는 분열증을 겪게 만든다. 이는 미담(美談) 프로에 대한 양가(兩價) 감정과 비슷하다. 그 균열 탓에 이런 관람평이 나온다. “이 영화는 ‘일본을 일으켜 세운 세대에 대한 헌사’라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딸이 아버지를 포용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군국주의 깃발 아래 개인적 삶을 희생당했던 일본 전후 세대의 정서가 이보다 더 아름답게 녹아들 수는 없을 것이다.”(천리안 영화동호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재주 덕에 기성 체제에 대한 헌사는 애잔한 낭만성을 더한다. 꿈을 소도구로 사용하여, 시간을 왕복하며 환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는 비단 <철도원>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작품집에 실린 <쓰노하쓰에서>와

<백중맞이>도 비슷한 장치를 갖고 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픈 과거를 딛고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지만, 경쟁에 뒤지고 해외로 쫓겨나게 된 상사 맨(<쓰노하쓰에서>), 남편이 바람이 난 데다가, 시가로부터 부당한 이혼을 요구받는 고독한 여인(<백중맞이>)의 이야기는 모두 상처 입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인생의 전환기에 마음에 묻어 두었던 상처를 다시금 꺼내지 않으면 안되는 막다른 지경에 처하지만, 주인공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환영의 활약으로 위기를 넘어선다.

<철도원>은, 전체주의적인 분위기에서 개인의 자존을 강조하는 일본식 자존심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이는 보수주의와 친화력이 높게 마련인데, 한 예로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동료들이 파업을 주도할 때 오토마쓰는, 오로지 기차는 달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다른 줄에 선다. 작가가 집단 행동에 대해 ‘우악스런 대중주의’라는 혐의를 품고 있음은, 담배 소송에 관한 단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사다 지로는 <슈칸 겐다이>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의 금연 운동을 이렇게 평했다. “자기가 좋아서 피워 놓고, 건강에 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거는 것은 지적인 퇴행의 극치이다. 이런 소송에서 원고가 승리한다면, 당뇨병이 난 것은 달디단 일본 전통 과자 탓이라는 소송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철도원>은 일본에서 단체 관람용으로 인기를 모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오토마쓰의 신념이 일본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판단한 몇몇 회사가 사원 교육용으로 삼은 것이다. 국민 배우 다카쿠라 켄이 5년 만에 출연한 작품으로도 화제가 되었다(그는 할리우드 영화 <블랙 레인>(연출 리들리 스콧)에서 속깊은 일본 형사로 출연해 낯이 익다. <철도원>은 그의 202번째 출연작이다). 평자들은 평생 호로마이 역을 지킨 늙은 역장과, 30년 동안 스크린을 지켜온 배우의 이미지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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