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문화적인 것과…><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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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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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묻고, 철학으로 답하기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김용석 지음
푸른숲(02-364-0487)펴냄/
4백쪽 2만원


철학의 주된 관심 영역이 ‘문화적인 것’으로 빠르게 기울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일찍이 1994년 〈철학적 문제로서의 문화〉를 통해 이른바 ‘문화 철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기한 김용석씨가 최근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라는 책을 내놓은 것이다.

현대 문화의 특징을 규정하고, 문화 창조자로서 사람의 정체에 대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지은이는 ‘세상의 중심이 정치 권력에서 문화 권력으로 이동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문화 담론·인간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 대한 성격 규명으로부터 시작해 미래 사회 예측으로 끝나지만, 그 방식은 직설적이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직문·직답을 우회해 가며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는 흔히 현대 사회의 속성으로 지목되는 ‘열린 사회’라는 신화에 속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고, 현대 사회의 한 특징인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새로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경계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의 말미에 미래 사회를 예언하는 ‘후기’를 달았다. 이에 따르면, 미래 사회는 ‘유크로니아(지은이가 고안한 개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의미)의 시대’이자, 화폐가 아닌 변화를 기획·창출·경영하는 지식이 자본이 되는 ‘변화 자본의 시대’이기도 하다.
역사학 논쟁 불붙인 ‘현대의 고전’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상·하)
E.P. 톰슨 지음 나종일 외 옮김
창작과 비평사(02-718-0543)
펴냄/6백50쪽 안팎
각권 3만원


역사학계는 물론 사회 과학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온 역사학 분야의 대작이 번역되어 나왔다. 마르크 블로흐·페르낭 브로델·자크 르코프·페리 앤더슨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역사가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주저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이 국내 역사학자 6명의 10년 작업 끝에 최근 우리말로 옮겨져 햇빛을 본 것이다.

이 책은 1780년대부터 1832년 사이 영국 노동 계급이 형성된 과정을 다루었다. 이 책이 유명해진 까닭은 산업혁명기 영국 노동 대중의 삶과 투쟁을 박진감 있게 그린 지은이의 문장력 외에도, 지은이가 이 책에서 시도하거나 적용한 ‘계급’에 대한 정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 역사 서술 방식 등이 서양 학계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영국 좌파 진영에 속했던 지은이는 1963년 이 책 초판을 내면서 노동 계급을 ‘처음부터 실재하는 객관적 존재’가 아닌 ‘일정한 관계 맺음을 통해 구체화해 가는 존재’로 파악함으로써 좌파 진영 내부의 이론가, 특히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 이 책이 가진 의미는, 노동 계급·대중 등을 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서양 역사 서술의 전통이었던 엘리트주의와 거대 담론 체계를 무너뜨리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 책 출간에 힘입어, 서양 역사학의 흐름은 주된 해석 단위가 ‘정치’에서 ‘사회’로 더욱 더 빠르게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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