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독서, 신화
  • 김영민 (한일신학대 교수·철학) ()
  • 승인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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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색 신화의 주인공은 30년이나 40년이 지나면, 자기 성찰의 긴장에 팽팽한 눈부신 시민으로 거듭나 있을까? 아니면, 수많은 다른 오늘날의 아빠들처럼, 읽는 것이라고는 스포츠 신문과 주식동향표뿐인, 우리
한두 번도 아니고, 마치 고장 난 축음기처럼 한결같은 틈을 두고 자지러지는 아기 웃음이 별안간 몹시 성가셨다. 흘깃 차창 밖을 살피니 고속버스는 부산을 출발한 지 3시간, 막 남원을 벗어나 춘향터널을 향하고 있었고, 그 사이 나는 문고판 한 권과 복사해온 논문 두 편을 어렵사리 끝내고, <현대의 신화>라는 책의 초입을 살피던 중이었다.

몇 칸을 건너 뒷좌석에는 젊은 아버지가 돌을 갓 넘긴 아기를 양손으로 붙안고 희희낙락하는데, 옆에는 아내인 듯한 여자가 물기 없는 다슬기처럼 곤하게 웅크려 있었다. 스물다섯 명 가량의 승객 중,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기를 포함해서 우리 셋뿐이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랬다.

왜 승객들은 책을 읽지 않을까?

스물두 명의 승객은 줄기차게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웃음은 삶의 근원적 죄악을 숨기는 것’(쇼펜하우어)이라거나,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은 자식을 생산하는 것’(레비나스)이라는 주장의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부자의 유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자식에도, 그리고 웃음에도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차츰 허물어지는 기력을 다잡아 가며 흔들리는 활자에 집착했다.

왜 이들 스물두 명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안타깝도록 청명한 봄날의 네 시간 동안, 왜 이들은 흔들리는 좌석에서 구겨진 휴지처럼 두께 없이 흔들리고만 있는 것일까? 물 밖에 나온 하마같이, 배부른 돼지같이, 막 배란을 마친 바다거북같이, 혹은 황소개구리를 삼킨 구렁이같이 비몽사몽으로 퍼질러져 단지 물상의 한 부분으로 환원되고 마는 것일까? 문득 내 머리 속에는 우문주의(右文主義)에 빠진 문사의 험한 상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떻게 이들은 혼자만의 공간 속에 주어진 한낮의 4시간 동안, 글 한 줄 읽지 않고 편편히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적 삶의 본질은 피곤함’(서영채)이니, ‘철학적 사변으로 현상의 일반적 본질을 미리 추정하지 말고 개체의 복잡을 낱낱이 살피라’(비트겐쉬타인)는 조언마저도, 세상 모르고 좌석에 붙박힌 이들 자본주의적 개인들을 꼬집는 내 문사적 편기(偏嗜)를 잠재우지 못한다.

젊은 아빠의 얼띤 재롱과 아기의 웃음소리는 계속된다. 나는 슬며시 그 아기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내 오래된 습벽이 도져, 15년 후 혹은 30년 후 변화한 그 아기의 모습과 삶의 형태를 거칠게 상상해 간다. 세월은, 이 아기의 웃음에 거는 젊은 아빠의 순정에 어떻게 보답할까? 순진무구한 웃음을 흘리며 그 아빠를 즐겁게 하는 이 아기가 자라면, 한낮의 4시간을 글 한 줄 읽지 않고도 마음이 편한 이 아빠보다 조금은 더 책을 많이 보게 될까?

이 백색 신화의 주인공은, 마치 그 웃음의 환상이 잠시 우리를 몽상하게 만들 듯이, 30년이나 40년이 지나면, 그 웃음의 색깔만큼이나 자기 성찰의 긴장에 팽팽한 박기후인(薄己厚人)과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눈부신 시민으로 거듭나 있을까? 아니면, 다중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다른 오늘날의 아빠들처럼, 그렇게, 남의 화단에 침 뱉고, 아무곳에서나 오줌 싸고, 핸들만 잡으면 욕설을 흘리고, 밥먹듯이 오입하고, 읽는 것이라고는 스포츠 신문과 주식동향표뿐인, 다만 우리 중의 한 명으로 낙착되고 말까?

‘미래란 과거 행동의 귀결이 현재의 행동에 적용되는 마음의 허구일 뿐’(홉스)이라는 결정론에 승복하지 않더라도, 현재는 늘 미래의 거울이며 우리는 필경 역사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는 법이니, 혹자들이 ‘시간의 우연성’과 그 창발력을 알리바이처럼 내세우더라도 나는 이 젊은 아빠가 그토록 어여삐 여기는 아기의 하아얀 웃음 속에서 별스런 희망을 읽지 못한다.

신화가 죽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핸드폰의 호출음과 코고는 소리만 점점이 이어지는 이 피곤한 고속버스 자본주의 속에는 백색 아기의 웃음이 유혹하는 신화, 그리고 내가 덧없이 믿는 독서의 신화만이 창 밖의 풍경과 더불어 끝없이 흔들린다. (jaja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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