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黨人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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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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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의 중심 축인 대통령조차 정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면 난국은 더 꼬이게 된다. 대범하게 마음을 비우고 공정하게 대선을 관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족의 명절인 설을 맞는 시정의 분위기가 어둡기 짝이 없다. 노동관계법 날치기 개정으로 야기된 총파업의 혼란이 채 가시기 전에 한보철강 부도 사태라는 미증유의 권력형 부정 부패 사건이 지진처럼 사회를 흔들고 있는 탓이다.

총파업 사태로 빚어진 경제 손실이 2조원을 넘어선 마당에 한보 사태로 또다시 5조원의 부담이 나라 살림에 얹혀졌다. 지난 1월의 무역 적자액이 34억 달러에 이르고, 해외 금융시장에서는 국내 은행 신용도가 급락하여 자금 유통이 마비될 지경이다. 그 뿐인가. 민심이 이반하는 징후는 갈수록 짙어지고, 국가의 도덕성과 현정권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불신의 골은 더 깊게 패고 있다. 노동자와 기업, 여당과 야당, 국민과 행정부 모두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국가적 위기 국면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난국에 처하게 된 데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있고, 그 처방도 달라야 할 것이 분명하다. 국가 지표 수정이나 구조 개혁, 행정 쇄신 등을 통한 근원적 치료는 현정권에 기대하기 어렵다. 임기 1년을 앞두고 정권 피로증과 레임 덕 현상에 접어들고 있는 YS 정권에 새로운 대계(大計)를 마련하라고 추달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정권 담임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총체적 난국의 직접 원인이 된 사안들에 대한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타개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특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김영삼 대통령의 책무는 막중하다.

김대통령은 지금 무엇보다 현정권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자신은 돈 한푼 안 받고 칼국수를 먹으며 도덕성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정계·관계·금융계·재계가 난마처럼 얽혀 건국 이래 최대 ‘부정 부패의 표본’인 한보 사태가 터져나온 것이다. 비리 연루자는 측근이든 누구든 사법 처리하여 부정 부패의 뿌리를 뽑겠다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 표명에 한 가닥 기대를 걸며, 난국 수습과 국민 화합을 위해 대통령이 발상을 전환하기를 간구한다.

무엇보다 먼저 김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이라는 당인(黨人)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기대하고 싶다. 위협과 음해 속에서 충돌로만 치닫는 지금의 가파른 정국은 결국 대선을 앞둔 정파 간의 힘겨루기에서 말미암는 것이며, 갈수록 정쟁의 파열음이 거세질 것도 분명하다. 차기 대권을 향해 혼신의 경주를 벌이는 여·야 주자들 간의 싸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국정의 중심 축인 대통령조차 정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드는 것은 난국을 더 꼬이게 할 뿐이다. 대범하게 마음을 비우고 공정하게 대선을 관리하겠다는 중립적 자세가 필요하다.

특검제 수용하고 인사 기강도 바로 세워야

둘째, 한보 사태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관철하기 위해 특별검사제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성역 없는 수사’와 ‘단호한 척결 의지’를 표명했지만, 민심 저변에는 과연 PK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팽배해 있으며, 그러한 의문이 불식되지 않는 한 국정 리더십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검찰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문제를 조사할 수 있고, 조사에 관해 광범위하고 독립적인 권한을 갖는 특별검사제를 수용해, 부패 척결로 국기를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액면 그대로 실천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할 것이다.

셋째, 인사의 형평성과 책임성을 명확히 지켜 국정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군과 안기부, 검찰과 경찰, 행정부와 유관 단체의 고위직을 특정 지역 출신이 독식하는 현상(44쪽 기사 참조)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데 대해 민심의 눈초리가 얼마나 싸늘한가를 인식해야 한다. 또한 당과 청와대와 행정부 내에서 대통령을 보필하는 주요 인사들에 대한 냉정한 검증이 시급하다. 날치기 정국과 한보 비리 정국을 통해 대통령 보좌 기능, 민심 수렴 기능, 정책 조율 기능에서 현저히 능력이 의심스러운 인물들이 연거푸 과오를 저지르고 있음을 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연·학연에 연연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엄정한 귀책 사유를 들어 물러나게 하는 것이 인사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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